인왕산 도성안 준수방에서 태어나
가장 뛰어난 정치가·국가 경영자
해가 져도 백성위해 끝없이 고민
진정한 리더는 역사속 변함 없어
경복궁 궁담길로 시간여행 가보자

정안대군 이방원은 조선 초 경복궁 밖에 집을 지었다. 세자도 아니고, 공신도 아닌 왕자로서 이성계와 정도전의 눈밖에 밀려 한성부 북부 준수방 장의동에 살았다. 지금은 경복궁 서쪽 서촌으로 불리는 인왕산 수성동계곡 따라 통인시장 근처가 그의 널따란 집터다. 이곳에서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살았다. 그렇다면 태종 이방원의 아들들은 어디에서 태어났을까? 궁 안일까, 궁 밖일까. 궁금증이 밀려온다. 길 위에서 내기를 한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인 세종 이도는 과연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을까….
세종대왕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에서도 심지어 며칠 전 프랑스 리그앙(Ligue 1)에서 이강인과 음바페의 유니폼에서도 한글을 만날 수 있었다. 역사상 최초로 프랑스 축구에서 한글 유니폼을 보니 소름이 돋는다. 광화문 광장에서도 세종대왕을 만날 수 있다. 한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글을 말하는 외국인이라면 세종대왕은 이제 다 안다. 심지어 여주 영릉(英陵)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 관광객은 세종을 거의 다 안다. 그런데 세종 이도가 22살까지 살았던 곳은 잘 모른다. 모두 경복궁에서 태어났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양녕대군과 효령대군 그리고 충녕대군은 궁 안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조선 27대 왕 중 최초로 한성부 출신인 세종은 인왕산 기슭 도성 안 준수방에서 태어났다. 세종 이도가 태어난 날 5월15일은 '스승의 날'이다. 만원권 지폐 속에도 세종대왕 어진과 태어나신 해와 돌아가신 날이 표시되어 있다. 누구나 가지고 다니는 지갑 속에 세종은 항상 있지만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다. 심지어 만 원권 앞뒤에 훈민정음 창제 후 쓴 '용비어천가', 왕의 상징인 '일월오봉도'와 해와 달을 관측하는 '혼천의', 농업의 발전을 위한 '천상열차분야지도'와 보현산 천문대의 '천체망원경'까지 그려져 있다.
세종대왕은 가장 뛰어난 정치가이며 국가경영자로서 경연과 구언을 항상 경청하였다. 해 뜨기 전 업무를 시작하여, 해 지고도 백성을 향해 끝없이 고민하였다. 또한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학문을 숭상하여 역사·지리·정치·경제·천문·도덕·예의·문자·문학·종교·군사·농사·의학·음악 등 모든 분야에 고루 저서를 편찬하였다. 특히 백성이 곧 하늘이라고 생각해 민본주의와 농본주의를 주장하며 농사짓는 방법과 생산량 증대를 위해 노력하였다. 해시계인 '앙부일구', 표준시계 물시계인 '자격루', 강우량을 측정하는 '측우기'를 만들고 심지어 청계천 홍수를 알리는 수표와 '수표교'까지 만들었다.

또한 어진 사람을 모아 정책 자문과 인재를 길렀으니 바로 '집현전'이었다. 젊고 유능한 사람이라면 출신보다는 능력 위주로 그들의 지식과 지혜를 모아 50여 종의 책을 편찬하였다. 집현전 학자들이 연구에 지치고 힘들 때는 과감하게 사가독서(賜暇讀書)를 주었다. 유능한 문신들에게 하사한 유급휴가로 책 읽고 연구에만 몰두하게 하였다. 진정한 리더의 품격이 엿보인다. 더욱이 일하는 여성인 관비와 남편에게도 출산 휴가를 주었으니 출산 정책이 600여 년 전 벌써 있었다. 세종대왕 이야기는 여주시 세종대왕면 영릉 앞 기념관에서도 끝없이 이어진다. 진정한 리더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역사 속에도 변함이 없다.
세종의 한결같은 마음을 엿볼 수 있어 행복한 시간여행이 되었다. 잠시도 게으르지 않고 백성을 형제처럼 소통한 지혜로운 리더, 세종 이도를 만나러 경복궁 궁담길 함께 걸어 볼까요.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