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첫해까지 국외기관 소장 기록물 담아
1945년 3월 미군 촬영 항공사진 등 사료적 가치
1945년 해방 직전 미군이 인천항 일대 주요 시설과 공장 등을 정밀하게 촬영한 항공사진이 미국에서 발굴돼 인천시립박물관이 최근 발간한 자료집을 통해 국내 최초로 공개됐다.
인천시립박물관이 최근 발간한 조사보고 제36집 '1944~1950 국외기관 소장 연합군, 미군 생산 인천자료'는 시립박물관이 지난해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진행한 학술조사 결과 자료집이다. 광복절 전후부터 한국전쟁 발발을 거쳐 인천상륙작전까지 격동기 인천을 국외기관 소장 기록물 85건으로 살핀 작업이다.
모씨네 사회적협동조합 아카이브 연구소가 주로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국립공문서관 2관(Archive Ⅱ)에서 발굴·수집한 인천 자료를 중심으로 시립박물관이 해당 시기 자료를 선별·조사했다. 자료집에 수록된 기록물 대부분은 국내에서 처음 공개된다.
가장 눈에 띄는 자료는 1945년 3월25일 미 20폭격전단사령부 사진정보파견대가 촬영한 사진정보조사보고서 5호 속 '조선 인천'이란 제목의 항공사진(30~33쪽)과 정찰 결과 보고서다.
이 항공사진은 해방 직전 월미도와 인천항만 주요 시설, 주변 지역의 대형 공장과 정미소, 철도역, 변전소, 유류저장소, 라디오 중계소 등을 샅샅이 담았고, 각각 번호를 매겨 사각형 상자로 표기했다. 항공사진과 함께 첨부된 문서에는 월미도와 인천항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들어있다. 당시 일본과 전쟁 중인 미군이 주요 폭격 목표물을 설정하고 그 정보를 분석한 폭격용 사진인 것이다.
미군은 1944년부터 인천을 비롯한 한반도 일대 항공사진 촬영을 수차례 진행했다. 이후 인천항에 대한 매우 구체적 정보를 압축한 지도를 작성해 활용했다. 이들 자료는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8일 미24군단 예하 24군수지원사령부가 인천항으로 상륙해 인천의 군수공장과 일본육군조병창 등을 접수한 군사 작전의 바탕이 됐다.
미군은 이들 자료를 바탕으로 적의 군사 재산, 귀속 재산 등을 처리했다. 현재 시점에서 이 항공사진은 해방 직전 인천항 일대 모습과 이후 한국전쟁과 인천상륙작전 전후 인천항 모습을 비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료로서 가치도 있다.
시립박물관 자료집은 상공에서 내려다본 항공사진·지도뿐 아니라 미군 등이 지상에서 촬영한 군사적 또는 홍보 목적의 기록사진들도 수록했다. 1945년 9월8일 미 해병들이 이날 상륙하는 연합군을 환영하기 위해 인천항 부근에 세운 구조물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44쪽)이 흥미롭다. 개선문처럼 세운 구조물 아래 하얗고 말끔한 군복의 미 해병들과 이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아이들과 주민들이 대비된다.
시립박물관 자료집은 해방 후 중국·일본 등지에서 인천항으로 들어온 귀환·송환자들, 인천상륙작전 직후 월미도와 인천 일대에서 붙잡힌 북한군 포로들, 폭격 피해를 입은 인천 시내 풍경, 전쟁고아들을 보살핀 고아원 등의 사진도 수록했다. 마지막으로 실은 사진은 애스컴시티(부평 미군기지) 내 고아원에서 생활하는 아이의 해맑은 모습(120쪽)이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