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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 경전이자 법전인 '마누법전'은 인생을 네 단계로 나누고 있다. 사회 규범과 인생에 필요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학습기, 결혼과 양육 등 생업에 종사하는 가주기, 은퇴하여 수행하는 임서기, 그리고 죽음과 영적 해탈을 준비하는 유행기(또는 만행기)가 그렇다. 오십 세 이후 백세 사이가 임서기와 유행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런 가르침과 달리 노년에도 가주기에 못지않은 활동을 정력적으로 펼쳐 나가는 이들도 많다. 초서는 육십의 나이에 '캔터베리 이야기'를 썼고, 괴테는 팔십에 '파우스트'를 완성했으며, 피카소는 구십의 고령에도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그뿐 아니라 톨스토이는 79세에 장편소설 '부활'을, 황석영도 팔순에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2020)를 발표했다. 그런가 하면 영조는 83세까지 국사를 관장했고, 조선 후기의 여항시인 조수삼은 83세 고령에 사마시(진사시)에 합격했으며, 그림 '영통동구'로 유명한 강세황은 61세에 관직에 나가 79세까지 병조참판·한성판윤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세계적인 인기를 누린 미국의 대표시인 롱펠로(1807~1882)는 시 '나이 든 이가 보내는 경외'를 통해서 노년의 인생을 이렇게 위로하고 찬양한다. "우리에겐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네/ 비록 차려입은 옷은 다르지만/ 노년은 젊음에 못지않은 기회인 것을/ 저녁 어스름이 옅어져 가면/ 낮에는 보이지 않던 별들이 가득하다네." 과연 시인의 말대로 나이가 들면 몸도 나이도 예전 같지 않지만, 노년에도 여전히 할 일이 남아 있고 또 이 때야말로 인생의 새로운 기회로서 젊어서는 보이지 않고 몰랐던 것들도 보이고 깊이 이해하게 되는 특권이 선물처럼 찾아온다.

그러나 이 같은 노익장도 건강과 경제가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평균 수명이 느는 만큼 노인 빈곤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가는 노인이 4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노인들이 이렇게 해서 버는 돈은 월평균 15만9천원으로 이를 일당으로 환산하면 5~6시간을 일하고 고작 6천200원을 버는 셈이다. 요즘 같아선 6천200원으로는 하루 한 끼 식사비도 안 된다. 평생 가족과 사회를 위해 헌신한 노인, 아니 선배 시민들의 빈곤과 복지에 대해 더 촘촘한 정책과 관심이 필요하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