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도 6년 연속 1위·출산률 하락
독특한 핀란드 사례… 눈여겨봐야
바닥 깨는 한국 삶의질·극저출산
주 35시간·월급여 250만원 이상
노동여건 파격 변화 최우선 과제


장제우-작가-전문가칼럼.jpg
장제우 작가
북유럽의 출산율 하락 추세가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 과거에도 하락과 반등의 부침을 겪었지만, 이번 하강기는 최저치를 갱신했거나 갱신할 추세라는 점에서 이전과 다르다. 특히 핀란드의 경우 일본과 비슷한 1.2대를 기록하며 초저출산 국가로 변모했다. 핀란드의 사례는 여러모로 독특하다. 핀란드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2018년 첫 1위에 오른 뒤 6년 연속 선두를 지키고 있다. 세계 최고의 삶의 질을 구가하는 동시에 급격한 저출산을 겪는 것이다.

핀란드의 역설을 설명해주는 몇 가지 자료를 보면, 먼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눈에 띈다. 세계가치관조사에서 일을 중요시하는 인식이 크게 증가한 반면, 가족을 중요시하는 인식은 소폭 하락했다. 핀란드 자체 조사에서는 일과 소셜미디어를 중요하게 여기는 집단에서 라이프스타일을 이유로 출산을 미루는 경향이 나타났다. 국제사회조사에 따르면 '자녀의 성장이 가장 기쁜 일'인지 물었을 때 북유럽 중 핀란드의 응답이 가장 낮다. 세계가치관조사에서 '부모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인지 물었을 때도 핀란드의 동의가 가장 적다. 도시화 정도에 따른 출산율 비교에서 핀란드 대도시의 출산율은 북유럽 가운데 두드러지게 낮다. 종합하면, 최근 핀란드에선 대도시에 살며 출산보다는 일과 개인생활을 선호하고 또 그 삶에 매우 만족하는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기록적인 저출산과 세계 최고의 삶의 질이라는 역설이 벌어지는 중이다. 핀란드의 출산율 하락세와 삶의 질 최전성기가 언제까지 동행할 것인지 지켜볼 만한 대목이다.

한국은 바닥을 알 수 없는 극저출산과 낮은 삶의 질에 머물러 있다. 노동시장과 가정 내 성평등을 위해 전력투구해야 할 시기에 변죽만 울려댄 결과이다. 짧은 노동시간과 위아래로 튀지 않는 적정 소득의 일자리를 성별 불문 보편화하고 가사 및 돌봄 분담의 균등도를 끌어올림으로써 출산율 방어와 삶의 질 제고에 나서야 했지만,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허송세월을 보냈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노동시장은 기실 남미형 사회에 어울리는 구조였다. 남성은 주 60시간 넘게 유급노동을 하고 여성은 가정 내 무급노동에 주력하며 조부모 및 친인척 간 돌봄을 품앗이하는 대가족 체제가 적합했던 것이다. 불평등, 부패, 범죄, 낮은 경제성장 등 객관적 여건에 비해 남미 국가들은 높은 삶의 질을 보여준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다른 항목에 비해 가족 만족도가 유난히 높고, 가부장적 성별 분업과 친밀한 관계의 대가족이 주요인으로 지목된다. 한국의 노동시간이 줄긴 했으나 여전히 선진국과의 차이가 현저하다. 이렇게 어중간하게 감소한 장시간의 노동으로는 북유럽 등 선진국 유형이 아닌 남미 유형이 적합하다. 급속도의 산업화로 대가족 체제가 해체되면서 선진국형 노동시장 및 가정 내 성평등 실현이 시급했지만 그저 말에만 그쳤다. 그렇게 보낸 수십 년의 결과가 지금의 '젠더 전쟁'이다.

지난 시기 한국의 출산율은 반짝 반등을 제외하면 내내 하락해왔다. 이번 정권에서는 상승은커녕 0.5대까지 내려갈 것인지가 관심사인 실정이다. 극저출산과 극고령화에 맞춰 사회구조와 개인생활을 기획할 수밖에 없다.

최우선 과제는 노동여건을 바꾸는 것이다. 그리하여 삶에 여유를 불어넣고 각박한 삶에서 벗어나야 첨예한 과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다. 주 35시간 이하, 월급여 250만원 이상의 일자리가 최저선이 되고 그 밑으로는 소수의 법정 최저임금 일자리가 되도록 노동시장을 철저히 뜯어고쳐야 한다. 이는 출산율에도 일정 부분 도움이 되겠지만 그와 무관하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이렇게 될 리 만무하다. 뻔히 벌어질 미래는 얼마 안 되는 양질의 일자리를 놓고 피 터지게 경쟁하는 와중에 40세에 접어든 남성의 60%가량이 독신이거나 연애를 하지 못하고, 여성도 그 못지 않게 홀로 사는 것이다. 미혼 남성이 미혼 여성만큼 독신 생활에 적응력이 높다면 다행이겠으나, 이미 한국은 서구에서 조금씩 늘어나는 인셀 현상이 대규모로 진행 중이다. 극저출산에 이어 빈발하는 인셀 테러로 세계의 이목을 끌게 될 날이 다가오고 있다.

/장제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