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선량 앞다퉈 머리 들이밀어
하지만 이마에 상처 경계할 일
비룡 꿈꾸는 잠룡·현룡들
국민이란 거룡의 역린 조심해야
그가 제시한 근거는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공룡 뼈 화석이다. 처음 본 사람들은 그 거대함과 기괴함에 얼마나 놀랐을까. 이런 뼈와 생김을 바탕으로 실제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라고 한다. 예컨대 드래곤의 왕으로 불리는 드라콘렉스는 평평한 정수리에 후두부는 길다란 뿔과 혹이 달렸다. 좀 익숙하지 않나. 바로 다양한 그림 속의 용 머리와 흡사한 형상 아닌가.
같은 용이지만 동서양 차이가 있다. 서양의 용은 날개가 있는 반면에 동양의 용에는 없다. 하늘을 나는데 말이다. 어쩌면 시조새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관련 화석이 보고된 게 1861년 독일 남부 바이에른 지방의 채석장이다. 서양의 사고로는 날개 없는 비상을 상상할 수 없겠다.
반면 동양의 용은 날개가 없는 대신 바람과 구름을 이용해 하늘에 오른다. 따라서 산이나 숲보다 물과 관계가 깊다. 황하의 잉어가 용문을 거슬러 용이 되고, 용왕도 바다에 살지 않는가. 하다 못해 개천에서 용이 나고. 그러고 보니 용의 피부도 비늘이다.
청룡의 해라서 그럴까. 갑진(甲辰) 벽두부터 숱한 잠룡(潛龍)이 머리를 내민다. 주역의 첫 괘가 건(乾)괘인데 때의 중요함을 일깨운다. 빨리 싹을 틔우면 얼고, 늦으면 결실을 맺지 못하는 법. 겸손함이 아직 몸에 배지 않고 배움도 치우친 상태에서는 세상물정을 헤아리기 어렵다. 눈 감고 코끼리 더듬어 기둥이다 벽이다 뱀이다 고집을 피우는 형국이다. 그나마 현룡(見龍)은 때와 공간을 얻어 싹 틔운 이들이다. 문제는 천시(天時)와 지리(地利)를 얻었다고 곧바로 날아오를 수 없다는 거다. 도와주고 이끄는 대인(大人)을 만나야 비로소 뜻을 이룬다는 거다. 결국 사람이다. 사람 일, 인사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푸르름 속에 꽃을 피우고 드디어 하늘을 나는 비룡(飛龍)도 곁에 사람이 필요하다. 예컨대 당(唐) 태종 이세민은 현무문의 변을 일으켜 천하를 얻지만, 방현령 위징의 보필로 정관의 치를 이룬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 고집 피우지 않고 귀에 거슬리는 말까지 겸손하게 들어야 바른 정치가 가능하다. 겸청즉명(兼聽則明)이다.
주역은 잠룡(潛龍) 현룡(見龍) 비룡(飛龍)에 이어 정점에 오른 항룡(亢龍)의 위태로움을 경고한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스스로 자제하고 물러날 때를 모르면 필시 후회할 일이 생긴다는 거다. 우리네 최고 권력인 제왕적 대통령도 임기가 불과 5년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겨우 5년짜리 권력이 겁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용문을 향해 헤엄치는 인사들이 많다. 거친 물살을 헤치고 올라가 용이 되는 꿈에 부풀어 있다. 너도나도 낙점(落點) 받기를 바란다. 특히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유력한 지역 선량(選良) 후보들은 앞다퉈 머리를 들이민다.
하지만 점액(點額)을 경계할 일이다. 이마에 상처를 입는다는 뜻인데, 출세를 향한 경쟁에서 패배자를 가리킨다. 그래서 그럴까. 용의 가슴에 거꾸로 난 비늘인 역린(逆鱗)을 건드릴까봐 잔뜩 몸을 사리는 눈치이다. 한비자는 세난(說難)에서 "용은 순한 짐승이다. 길들이면 타고 다닐 수도 있다. 하지만 턱밑 가슴에 거꾸로 난 역린을 건드리면 용은 반드시 그를 찔러 죽인다"고 했다.
한비자는 군주를 용에 비유했지만, 지금은 21세기 민주공화국이다. 그렇다면 역린의 주인공은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권력의 원천인 국민이겠다. 국민 선택을 받겠다면 공천권자가 아니라 모름지기 유권자 국민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공복(公僕)의 우두머리도 주인인 국민의 뜻을 헤아려야 한다. 임금도 민심의 바다에 떠있는 한낱 조각배에 불과하다.
총선이 눈앞이다. 비룡을 꿈꾸는 잠룡 현룡은 국민이란 거룡(巨龍)의 역린을 조심해야 한다. 그게 점액을 피하는 길이다.
/박종권 칼럼니스트·(사)다산연구소 기획위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