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전문의 최소 16년 걸리지만
수술 결과 안좋을땐 제재·소송 일쑤
정부 의사수 늘리고 지역 강제 공언
학부모 냉혹한 현실 맞을 준비해야
'작금의 현실' 이성적 고민하길
그렇게 의대를 졸업하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신경외과를 택했다. 일할 것도 공부할 것도 많고 잠은 늘 부족했다. 아버지는 의대 교수로 있는 친구들을 내심 부러워하셨다. 나도 뇌혈관 펠로우를 하고 모교에 잠시 진료 교수로 일하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그만둘 때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보이지 않는 아버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동안 힘들게 나를 채찍질하며 살아왔다고, 이제 나의 삶을 살겠다고. 그러고는 종합병원 신경외과 과장이 됐다. 내 나이 마흔 즈음이었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을 의대에 보내고 싶어 안달이다. 고교 졸업생이 제대로 된 전문의가 되려면 남자의 경우 적어도 16년이 걸린다. 의대에는 한 과목이라도 F가 있으면 유급하는 제도가 있어 6년 만에 졸업하기도 쉽지 않다. 전문의가 되고서도 독립적인 진료를 하려면 자기만의 경험이 2~3년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보통 마흔은 되어야 사람 살릴 수 있는 제대로 된 의사가 된다.
이 과정은 단순히 '의사 교육'이라는 말로는 부족하고 '의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표현해야 옳다. 그 기간 환자가 의사를 만들어주는 측면도 크고 정부·법조계·언론계 등 사회 구성원이 도와줘야 한다. 제대로 된 의사가 되기 위해 우리 사회가 겪어야 하는 과정임을 모두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라떼'는 제법 그랬다. 밤낮없이 수술실과 중환자실을 들락거리며 환자를 위해 노력했다면, 그 결과가 사망이라 할지라도 보호자와 서로 고맙고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며 함께 펑펑 울 수 있었다.
의업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늘 정확하게 옳게 진단하고 멋지게 수술할 수는 없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치료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의사가 잘못했다고 비난하는 보도가 나오고, 정부에서는 제재를 가하고, 사법부는 민사소송에서 수억 원을 물어주라 하고 형사소송에서 징역형을 내리고 있다. 소위 필수의료를 하면 어느 의사든 사망진단서를 종종 쓰게 된다. 요즘은 사망진단서 한 장 한 장이 소송의 위험과 비례하는 세상이 됐다. 그러다 보니 필수의료에 지원하는 의사가 줄고, 필수의료를 이탈해 사람 살리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진료를 한다. 그 와중에 환자들은 더 큰 병원만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의사 수를 대폭 늘려 낙수처럼 떨어지는 의사들을 모으면 필수의료가 살아날 것이라고 한다. 국회의원들은 공공의대와 지역의사제를 만들어 10년간 해당 지역에서만 의사를 하도록 강제하겠다고 한다. 지역 환자들은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몰리는데도 그들은 묶지 않고 의사만 묶겠다고 한다.
나는 언젠가부터 수술을 안하려 마음먹게 됐다. 소송하겠다고 협박하는 보호자를 만날 때마다 마음이 덜컥했는데, 실제 소송을 당해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나는 최근 수술실 없이 운영하는 신경외과의원 원장이 됐다. 의사가 된 지난 20여 년간 밤새 환자 관련 전화를 받지 않은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앞으로는 자다가 새벽에 전화받고 벌떡 일어나 수술하러 가지 않아도 되고 수시로 사망진단서를 작성할 일도 없다. 소송의 위험에서도 멀어진다.
요즘 의대생이나 젊은 의사들에게 물어보면 부모의 권유로 의대에 진학했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학부모들에게 고한다. 자녀들이 스스로 원하지 않던 그 오랜 힘든 과정을 행복하게 해낼 수 있을까. 언론에서 알려준 것과는 판이한 의사들의 냉혹한 현실을 학부모들은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가.
필수 의료과 레지던트 지원을 고려하는 의대생과 인턴들에게 고한다. 교도소 담장을 걷는 심정으로 평생 환자를 살릴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가. 억울해도 수억원을 배상하고, 여차하면 감옥 갈 각오가 돼 있는가. 이성적으로 작금의 현실을 보고 고민하길 바란다.
/조성윤 미래의료포럼 상임위원·리젠에스신경외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