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 신상 공개 명예훼손 등 혐의
현행법 얼굴제외 이름·주소 공개
시민단체 "양육비 해결 국가 나서야"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부모의 신상을 온라인으로 공개한 '배드파더스(Bad Fathers)' 사이트 운영자 구본창(61)씨에 대한 유죄 판결이 이달 초 확정됐다. 구씨와 같은 이유로 고발당해 재판을 기다리는 인천지역 부모들은 "신상 공개는 아이들 생존권을 위한 선택"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법원 2부(주심·천대엽 대법관)는 지난 4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구씨에게 벌금 100만원의 선고를 유예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구씨는 2018년 9∼10월 자녀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라고 제보를 받은 사람 5명의 사진을 포함한 신상 정보를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공개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구씨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2심 법원은 구씨 활동을 '사적제재'라고 보고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2심 판결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를 두고 구씨와 같은 이유로 법정에 선 인천지역 부모들은 "신상 공개는 아이들을 위한 최후의 선택"이라며 법원 판결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혼한 전 남편에게서 양육비를 받지 못한 채 인천에서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는 김은진(44)씨는 2021년 5월께 인천 중구에 있는 전 시아버지 사무실 앞에서 양육비 지급 촉구 집회를 하다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당해 인천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오는 16일에도 관련 재판이 예정돼 있다.
김씨는 "전 남편 집에 20여 차례 찾아가 양육비 지급을 촉구했지만,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아버지 회사 앞을 찾아갔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 친부에게 2천여만원의 양육비를 받지 못한 이모(42)씨도 비슷한 처지다. 그는 2021년 1∼2월께 인천 강화군 한 길거리에서 아이 친부의 얼굴 사진과 '양육비 지급하라'라고 쓴 팻말을 들고 3차례 1인 시위를 한 혐의(명예훼손 등)로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법원 판단이 부당하다며 즉각 항소했고, 2심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이씨는 "법원에서 아이 친부에게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이행 명령을 내렸는데도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면서 "1인 시위를 하고 나니 동네 창피하다며 양육비 일부를 지급하더라"라고 말했다.
2021년 7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에 따라 양육비 미지급자의 얼굴 사진을 제외한 이름, 생년월일, 직업, 주소(근무지) 등 신상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양육비 지급 이행 명령을 따르지 않은 이들에 대해선 출국금지, 운전면허 정지 처분도 내리고 있다.
이런 명령을 받고도 1년 동안 정당한 사유 없이 양육비 미지급이 계속되면, 최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법원은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재판에서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잇따라 선고했다.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는 "양육비를 받기 위해 부모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자칫하면 이들이 가해자가 될 수 있다"면서도 "(이번 판결로) 이제 문제 해결의 책임은 행정부와 사법부, 입법부 손에 넘어갔다. 국가가 나서 양육비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