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질병·고령 가족 돌봄·생계 책임지는 '영 케어러'들
부평·연수구 지원책 혜택 청년 0명… "대상자 발굴 우선"
"젊은 나이에 돌봄의 책임이 생긴다는 건 가난의 굴레에 영원히 갇히는 것과 같아요. 언제까지 간병과 돌봄을 해야 할지도 모른 채 가족의 부속품처럼 살 수밖에 없는 거죠."
인천 남동구에 사는 최모(29)씨 일상은 1년 전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의료사고로 중증장애 판정을 받으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며 상담센터에서 근무했던 최씨는 곧바로 일을 관두고 어머니를 간병하며 집안일에 전념해야 했다.
최씨는 "나중에 회사에 이력서를 낼 때 그동안의 공백을 어떻게 볼지 걱정된다. 어머니를 돌보느라 쉴 틈 없이 보낸 시간이 사회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으로 인식된다"고 토로했다.
인천 미추홀구에 사는 이모(32)씨는 6년 전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가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병원비를 마련하느라 휴학하고 2살 어린 동생과 공장에서 일했다.
이씨는 "돈을 벌고 아버지를 돌봐야 해 공부는 꿈도 꾸지 못했다"며 "일을 하느라 아버지와 생전에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 게 참 아쉽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현재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돌보며 가장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처럼 장애, 질병, 고령 등 도움이 필요한 가족을 돌보거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청년들을 '가족돌봄청년'(Young Carer·영 케어러)이라고 한다. 2021년 5월 생활고 탓에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22세 아들의 '간병 살인'을 계기로 가족돌봄청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해 11월 인천에서는 '인천시 가족돌봄 청소년, 청년 지원 조례'가 제정돼 9~34세 이하의 이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근거가 마련됐다.
앞서 인천 부평구와 연수구는 보건복지부가 시행하는 일상돌봄서비스 사업을 지난해 시범 운영했다. 사회복지사가 중장년, 가족돌봄청년 집에 방문해 가족을 돌보거나 청소, 빨래 등 가사노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부평구, 연수구에서 이 혜택을 받은 가족돌봄청년은 단 1명도 없었다. 이런 지원책이 있다는 것을 가족돌봄청년들이 알지 못해 신청자가 없었던 것이다. 인천시는 가족돌봄청년이 얼마나 되는지 기초적 실태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이 때문에 대상자에게 가족돌봄청년 지원 정책을 안내할 수 없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인천시는 개선책 마련 없이 올해부터 부평구와 연수구에서 시행한 일상돌봄서비스를 옹진군을 제외한 9개 군·구로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최씨는 "하루에 1시간만이라도 나의 일을 누군가 도와준다면 숨통이 트일 것 같다"며 "분명 좋은 정책이지만 아무도 그 혜택을 받지 못했다면 죽은 정책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인천여성가족재단이 기초생활수급자 수, 외국 연구자료 등을 토대로 지난해 추산한 인천지역 가족돌봄청소년·청년은 최대 2만3천여명이다. 인천여성가족재단 최정호 선임연구위원은 "가족돌봄청년은 스스로 자신이 복지 대상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이들을 발굴하고 현장의 요구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인천시 복지정책과 관계자는 "조례가 지난해 11월에 제정돼 올해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못했다"며 "추가경정예산 편성 때 사업비를 확보하고, 대상자 발굴과 지원책 안내 계획 등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