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 앞두고 서민 곁에서
희망·미래 약속 감언이설 난무
분열·갈등 조장 그들만의 정치
차별·고통받는 사람 누구인지
아우성 언제쯤 깨달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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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동료 시민이라는 말을 참 좋아했다. 글을 쓰거나, 어딘가에서 이야기를 할 때 즐겨 사용했다. 살아온 과정과 경험이 다르지만, 어깨를 맞대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할 때, 권리의 주체이며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사람을 지칭할 때, 험난한 사회를 함께 헤쳐 나가는 이들을 호명할 때 동료 시민처럼 딱 들어맞는 말은 없었다. 인권활동을 하며 참으로 익숙하게 사용해 왔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말을 입 밖에 내자니 씁쓸함이 몰려온다. 바로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 때문이다.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한 취임 연설에서 동료 시민을 10차례 언급했다. 한동훈의 정치철학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료 시민이라는 단어의 등장에 언론은 연일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금세 뜨겁다 차게 식는 한국 사회에서 동료 시민으로 시작되는 기사가 몇 주째 계속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여운이 참으로 길긴 한가 보다.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했지만 신선한 변화는 없었다. 구태의연한 갈라치기 정치의 반복과 여전히 그대로인 그들만의 리그를 확인했을 뿐이다. 얼마 전 통과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만 봐도 그렇다.

지난 9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통과되었다. 159명의 생명이 서울 한복판에서 사라진 지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뒤 만들어진 결실이었다. 사랑하는 이들의 마지막이 어떠했는지 알 수 없는 가족들은 특별법을 만들어 진상을 규명하는 조사를 하고 책임을 묻고자 했다. 왜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했는지 진실을 밝히는 것은 참사 해결의 첫걸음을 내딛는 일이다. 정치인들은 그 과정에 앞장서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 통과 역시 시민들이 안전한 사회를 위해 정치인이 당연히 해야 할 역할이었다. 그러나 지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민의힘은 재난의 정쟁화 운운하며 외면해왔다. 결국 특별법은 여당의 퇴장으로 야당 단독으로 처리되었다. 지난 정치의 과오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가 출범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슬픔에 가득 찬 참사 유가족을 위로해주는 일이었다. 그간 외면했던 일에 대한 사죄와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통과된 특별법에 '사실상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이태원 특검', '국론 분열'을 이야기하며 부정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들이 말하는 동료 시민에 사라져간 159명의 시민과 이태원 참사 피해자는 없었다.

그뿐 아니다. 전세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특별법 개정과 소통을 요구했지만 귀담아 응답하지 않고 있다. 주거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며, 그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국가와 정치가 해야 할 몫이다. 그러나 여전히 잃은 자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도 그들이 말하는 동료 시민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인가?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동료 시민은 과연 누구인가.

경제 위기, 가계 위기, 전쟁 위기, 기후 위기, 감염병 위기 등…. 위기가 반복해서 우리 삶을 두드리고 있다. 자살률, 출산율, 노인 빈곤, 불평등과 양극화 등 각종 사회지표가 최악으로 향하는 중이다. 이 시대의 동료 시민들은 막막한 사회에서 오늘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들이 보지 않는 진짜 동료 시민들의 삶이다. 총선을 앞두고 시민, 서민의 곁에서 희망과 미래를 약속하겠다는 감언이설이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희망도 미래도 보이지 않는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진짜 동료 시민들의 삶은 뒷전인 채 분열, 갈등을 조장하고 있는 그들만의 정치 때문이다. 답답한 정치에 시민들의 삶만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정말 필요한 것은 정권의 안위만을 위하는 정치가 아니다. 차별받고 배제된 사람은 누구인지, 그들이 처한 고통과 현실이 무엇인지 살피는 정치다. 언제쯤 동료 시민들의 아우성을 정치가 깨달을 수 있을까.

/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