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문화된 인사청문제도 권위·실효성 상실
'법 앞세워 자료제출 거부' 관행처럼 변모
집권세력 무능에 뒤지지 않는 '야당 논란'
가히 '정치실종'… 주어진 권한 절제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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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객원논설위원
인사청문회 제도는 2000년 김대중 정부때 도입됐다. 처음에는 청문 대상이 국무위원으로 극히 제한되었으나 점차 적용 범위가 넓어져서 지금은 검찰총장, 국정원장, 합참의장, 참모총장, 대법관 등 국정의 주요 고위 공직자가 거의 다 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사청문제도가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사청문제도는 사문화됐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권위는 물론 실효성을 상실해가고 있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여부와 무관하게 이른바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인사권 행사에 의해 인사청문 후보자에 대한 임명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양상은 동일하다. 이미 인사청문제도는 권력에 의해 형해화 되었다. 게다가 숱한 정치 쟁점과 이슈에 묻혀서 청문회를 통한 국민과 언론에 의해 이루어졌던 감시 기능조차 사라지고 말았다.

청문회 무용론이 대두된 여러 요인이 있지만 자료제출 거부는 후보자들에게는 '여의도 문법'이 되었다. 후보자들의 정보 제공 '부동의'가 아무런 제지 없이 일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자료제출 거부'는 윤석열 정부 취임 이후 거의 관행화되고 있다. 인사청문회 당일에도 시간을 미루다가 일부만 제출하는 전략이 '관례'가 되다시피 한다는 얘기다. 자료제출 거부의 이유는 '개인정보'다. 그리고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사 검증의 첫 단계인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의 인사검증자료 제출과 대통령실의 선택과정에서 인사 문턱이 대폭 낮아졌다. 인사검증단계에서 병역, 탈세, 법인카드 유용, 폭력 전과, 불법 증여 등은 기본 검증단계에서 기본적으로 걸러질 수 있는 내역들이다. 이렇듯 청문회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장관이나 고위공직자들이 부처에서 리더십을 확보할 수는 없다. 게다가 유난히 비전문가의 등용도 지난 정권들에 비해서 잦은 편이다. 전 대통령실 대변인이 외교부 차관이 되고, 외교관 출신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되고, 경영학 교수를 보훈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했다. 검찰 출신 방통위원장 후보는 스스로를 '비전문가'로 인정했다. 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으면 10일 이내에 재송부 요청을 할 수 있어 관행적으로 3일이나 5일 정도의 여유를 주고 국회에서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했지만 최근엔 이마저도 달라졌다. 김홍일 방통위원장 후보자에 대해서는 하루의 기한을 주면서 청문경과보고서 재송부를 요청했다. 최소한의 여유도 주지 않는 것은 국회 경시 태도로 비칠 수 있다. 집권세력의 여러 무능과 논란을 제공하는 부정적 이슈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것은 당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기인하는 '방탄정당' '사당화' 논란 때문이다. 그러나 집권한 측에서 개혁의 성과를 보이지 못한다면 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사당화 문제를 비판할 명분을 잃게 된다.

인사의 난맥과 함께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는 이유로 남발되고 있는 '재의요구권'(거부권) 역시 신중하게 행사되어야 한다. 헌법 제53조에 명시되어 있는 대통령의 법률안 재의요구권은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행사가 자제되어야 한다. 국회에서 입법된 법률에 대해 받아들이는 게 정도(正道)다. 물론 야당이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무용화될 줄을 뻔히 알면서도 수적 우세를 바탕으로 여당과의 협의에 임하지 않는 것 역시 '다수당의 횡포'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재의 정치실종을 특정 정파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 없다. 그러나 비록 소수당이지만 국가권력을 수중에 넣은 여권이 야당에 비해 우월한 권위와 명분을 확보하려면 야당의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규범을 지키고 설령 주어진 권한이라 해도 최소한으로 행사할 때 권위와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자제와 절제의 규범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소한의 요건이다. 권력이 무분별하게 행사되고 남발되는 경향성을 보일 때 권력에 대한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총선이 90일도 남지 않았다. 국민의힘에 한동훈 비대위가 쇄신에 시동을 걸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의도 사투리'가 지배적 우위를 확보한다면 국민의힘은 야당의 많은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에서 힘겨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5천만의 언어'는 말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