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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인지 필연인지 단정할 순 없지만, 특별한 인물들이 동시대에 한꺼번에 출현해 역사를 전환시킨 사례가 적지 않다. 칼 야스퍼스는 기원전 900년부터 200년 사이를 '축의 시대(Axial-Age)'로 명명했다. 기원전 5·6세기에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가 동서양에 동시에 등장해 종교와 철학을 탄생시켰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기원인 팔레스타인 선지자들도 축의 시대의 주역이었다.

르네상스 시대도 한꺼번에 등장한 동시대 천재들의 협업 결과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미켈란젤로·라파엘로가 동시에 자웅을 겨뤘고, 메디치 가문이 툭 튀어나와 자금을 댔고, 마르틴 루터는 종교개혁으로 인문의 자유를 뒷받침했다. 누구 하나만 빠져도 르네상스는 반쪽이 될 뻔했다. 2차세계대전은 동서양의 전체주의자들이 한 시대에 등장해 축의 동맹을 맺고 일으켰다. 히틀러의 나치즘, 무솔리니의 파시즘, 도조 히데키의 군국주의가 서로 다른 시대에 등장했다면 2차대전은 세계대전이 아니라 국지전으로 흩어져 기록됐을지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간) 공화당 대선후보 첫 경선인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경쟁후보를 압도하고 과반득표로 승리했다. 트럼프가 이 기세로 공화당 후보로 11월 미 대선에서 승리할까봐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체주의 지도자들인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냉전시대의 한 축을 이룬 상태다. 여기에 이상행동 지도자인 트럼프가 복귀해 민주진영 동맹 축을 흔들면 두 축의 균형이 위태로워진다.

김정은이 최근 조평통 등 대남 대화채널을 폐지하고, 대한민국을 제1적대국으로 명기하는 헌법 개정을 지시했다. 대만을 향한 중국의 '하나의 중국' 정책과 같이, 대한민국을 향해 하나의 북조선을 선언한 것이다. 핵무장국의 무력 시위다. 김정은과 '사랑의 친서'를 주고받은 트럼프다. 집권해 한반도에서 발을 쏙 빼고 북한을 핵무장국으로 인정하면, 대한민국은 낙동강 오리알이 된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불사하는 지도자들이 동시에 출현한 시대다. 정신 사나운 트럼프가 복귀하면 푸틴, 시진핑, 김정은의 냉전 축에 갇힌 우리 운명이 혼돈의 꼭짓점에 설 수 있다. 예민한 생존본능을 발휘해야 할 시대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