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켜주세요" 대부분 사람들 무반응
걸린 수레를 살짝 들어주는 여행객
감사할것 없다는듯 쿨한 모습 멋져
힘들기만하다 친절이 이렇게 달다


무거운 수레를 끄는 일은 관성의 법칙을 체험하기 좋은 일이다. 한번 움직이기 시작한 수레는 멈추기 어렵고 멈춘 수레는 다시 움직이기 힘들다. 수레를 멈췄다가 다시 움직이려면 끌고갈 때 보다 몇 배의 힘을 더 내야 한다. 그리고 수레가 다니는 길은 면세점 쇼핑을 위해 수많은 여행객이 오가는 곳이다. 수레가 사람과 부딪히면 큰 사고가 날 수 있기에 사람이 붐비는 구간을 지날 때는 신경이 곤두서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짐을 가득 실은 커다란 수레가 지나가면 모두가 알아서 비켜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앞을 거의 보지 않는다. 화려한 명품 브랜드 상점의 전시된 상품들을 고개 돌려 바라보며 걷거나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보며 다가온다. 고개를 돌려 반짝이는 것들에 눈을 맞춘 채 무작정 다가오는 사람들의 시선을 앞쪽으로 가져오기 위해 "잠시만요"라고 부드럽게 말하며 지나갔다. 큰소리로 말하면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기분이 상할 수 있으므로 최대한 친절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반응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상품들은 빛을 발하지만 대비되는 풍경을 더욱 어둡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스마트폰에 고개를 숙인 사람들은 대부분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목소리가 닿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성량을 좀 더 크게 올리고 대사의 문구를 수정하여 명확한 의사를 전달했다. "비켜주세요!" 그제서야 사람들이 돌아보기 시작했다. 간혹 기분이 상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감사합니다!" 하고 덧붙였다. 하지만 여전히 전혀 반응이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처음엔 의아했으나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외국인이었다. 문구의 수정이 불가피했다. 그래서 "비켜주세요!"에 반응이 없으면 그 즉시 "쏘리!"를 꺼내 들었다. "익스큐즈미"도 고려했지만 급할 때 입에서 얼른 나오지 않았다. 문법에 맞는지야 모르겠지만 나와 부딪힐 뻔한 외국인들은 모두 "쏘리"하고 지나갔다. 그래서 나도 쏘리를 시작한 건데 여러 국적의 외국인들에게 아주 잘 통했다. 기분이 상해 보이면 그 뒤에 즉시 "땡큐"를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평소에 스스로를 친절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력을 다해 땀을 흘리며 수레를 끌고 갈 때 멀리서부터 누가 고개를 숙이고 이어폰을 낀 채 스마트폰을 보면서 걸어오면 마음이 거칠어진다. 게다가 계속 비켜달라고 사정조로 외치는데도 이어폰 음량 때문인지 전혀 앞을 보지 않고 걸어오는 사람과 지척이 되어 무거운 수레를 간신히 전신으로 막아서며 멈추게 되면 짐짓 화도 나는 것이다. 내게 있다고 여긴 친절은 사실 콩알만 하고 그조차도 내가 힘들 때는 작동이 안 되는 얄팍한 것이었다. 여행객들이 많은 날에는 짜증이 났다. 여행객이 많아야 내 일자리도 유지되건만 일이 불편한 게 먼저 와 닿았다. 친절은 아주 멀다.
물건 내리고 빈 수레 두 개를 겹쳐 올리다가 뒤쪽이 걸려서 잠시 머뭇거리는데 지나가던 여행객이 살짝 들어주고 스쳐 지나갔다. 감사할 것 없다는 듯이 고개를 까딱하고 지나가는데 우아한 걸음걸이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는 쿨한 뒷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다. 나도 모르게 "땡큐!" 했다가 그래도 모자란 것 같아서 뒤에다 대고 다시 "땡큐 베리마치!" 하고 외쳤다. 친절이고 뭐고 힘들기만 하다가 친절이 이렇게 달다.
"비켜주세요! 감사합니다! 쏘리! 땡큐!" 요란하게 수레가 지나간다.
/이원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