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단법인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와 여론조사기업인 한국리서치가 18일 '2023 한국인의 공공갈등 의식조사' 결과를 밝혔다.(2023.12.28~2024.1.3 전국 19세 이상 1천명 대상.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p) 2013년부터 매년 발표되는 조사는 우리 사회 갈등의 현황 파악에 유용하다. 결과는 국민의 체감대로지만, 숫자로 확인하는 현실은 고통스럽다.
조사결과에서 응답자의 89.8%가 우리 사회의 집단 간 갈등 수준이 심각하다고 봤다. 조사 첫해인 2013년 92.8% 보다는 낮지만 도긴개긴이다. 10명 중 9명이 11년 조사기간 내내 한국을 집단갈등 사회라 답했다. 가장 눈에 띄는 갈등 유형은 진보 대 보수의 이념갈등이다. 전통적인 1위였던 빈부갈등을 2019년에 제친 이후 이번에도 86.6%로 집단갈등의 대표 유형이 됐다. 시점이 공교롭다. 박근혜 탄핵사태로 심각해진 보수와 진보의 이념갈등이 조국사태로 광장에서 충돌한 때가 2019년이다.
14개 유형 중 약진한 갈등도 있다. 2013년 14위(29.0%)였던 남녀갈등은 2021년 50%대에 진입해 이번엔 9위(53.1%)로 치솟았다. 청년과 노인간 세대갈등도 2013년 61.1%에서 11년만에 71.8%로 껑충 뛰었다. 영호남 갈등이 정권을 따라 들쑥날쑥하는 동안, 수도권 대 지방의 갈등이 2023년 65.3%로 2013년(50.2%) 보다 심화된 것도 주목할만한 현상이다. 모두 편가르는 정치의 이념갈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갈등들이다.
이 조사의 11년 추세는 정치갈등이 노사갈등과 같은 전통적인 갈등 유형을 방치한 것도 모자라, 스스로 갈등의 왕좌에 올라 비주류 갈등들을 증폭해 온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글로벌 여론조사 기업 입소스의 2021년 28개국 문화갈등 조사결과에서도 한국의 정당갈등은 91%로 미국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해야 할 정치가 모든 갈등의 원천인 시대에 한국정치의 갈등 기량은 발군이다.
이처럼 후진 정치와 갈등사회에서도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 한국인은 기적의 민족이다. 갈등에 내성이 생긴 건가, 아니면 갈등을 즐기는 수준으로 해탈한 것인가. 하지만 현재의 갈등 수준이 폭발 직전의 임계점이라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곧 총선이다. 진영을 초월해 갈등에 기생하는 정치인들을 솎아내야 한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