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유사사례 잇따라… 장인정신 명성 타격
韓 식품대기업 꼼수인상·한국타이어 부패
정부의 비리업체 징계 없어도 시장서 도태
다이하쓰는 지난달 26일부터 모든 차종의 출하 중지 및 일본 내 4개 공장 가동을 1월 말까지 중단한다. 2022년에는 도요타그룹의 상용차 전문 제조업체인 히노자동차가 20년 동안 배출가스와 연비를 조작해온 것이 확인되면서 일본 정부는 관련 엔진을 탑재한 차량 생산을 금지했다. 자동차는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품질부정이 미치는 파장은 매우 크다. 2009년에는 도요타자동차의 가속페달과 전자제어장치 결함문제가 불거지면서 사상 최대 규모의 리콜로 수십조 원의 손실이 발생했었다.
일본의 다른 주요 제조업체서도 유사한 부정사례들이 잇달아 발각되고 있다. 미쓰비시전기는 40년 동안 원전이나 철도회사 등에서 사용되는 변압기 최종검사 과정에서 데이터를 거짓으로 작성하는 조직적인 범죄를 저질러 왔다. 일본제강에서도 1998년부터 2022년까지 24년 동안 발전소 터빈과 발전기의 축인 로터 샤프트 제작에서 부정이 있었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한 일본의 제조문화인 '모노즈쿠리' 명성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메이드인 재팬'의 신뢰가 흔들리는 것이다.
지난 연말에 한국에서는 다른 유형의 기업 비리 문제가 불거졌다. 롯데제과, CJ제일제당, 동원F&B, 풀무원 등 식품 대기업들의 조잡스러운 구태(舊態)가 확인된 것이다. 제품 가격은 그대로인데 제품의 용량을 줄이거나 품질을 떨어뜨리는 식의 '꼼수 인상' 사례들이 대거 적발되었다. 지난달 20일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과자류, 소시지, 만두, 맥주 등 소비자들이 즐겨 찾는 제품군의 조사 결과, "총 28개 제품에서 슈링크플레이션, 2개 제품에서는 스킴플레이션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슈링크플레이션은 가격은 그대로 둔 채 제품량을 줄이는 것을, 스킴플레이션은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을 떨어뜨려 사실상 가격을 인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기업들뿐이겠나. 인플레 국면에서 눈 가리고 아옹 하는 기업들이 부지기수일 것으로 추정된다. 자자손손 오너 일가들의 배를 불려온 한국의 간판 대기업들이 고단한 서민들의 주머니나 축을 내는 것이다. 시장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들이다.
지난해 세모를 후끈 달구었던 한국앤컴퍼니(한국타이어)의 '형제의 난'도 조현범 회장의 도덕적 해이가 빌미를 제공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위이기도 한 조현범 회장은 2014~2017년에 한국타이어가 계열사인 MKT의 타이어몰드(타이어를 찍어내는 틀)를 비싼 값에 구매케 하고 조 회장 등이 그 차익을 착복함으로써 MKT에 131억 원의 손실을 입힌 혐의를 받았다. 조 회장은 2017∼2022년 약 75억원의 회삿돈을 횡령·배임한 혐의도 받아 작년 3월에 구속되었다가 작년 11월28일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국내 최대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는 뜬금없이(?) 한국앤컴퍼니 골육상쟁에 참여해서 눈길을 끌었다. MBK는 가담 이유로 '지배구조 부실과 대주주 사법리스크에 따른 기업가치 하락에 주목'해서 한국앤컴퍼니 주식을 대거 사들이려 했단다. 하마터면 세계 6위 글로벌스타 기업의 오너경영인이 바뀔 수도 있었다. 기업사냥꾼들은 아프리카평원의 청소부 하이에나처럼 썩은 냄새 나는 기업을 노린다. 정부가 위력으로 비리 기업들을 징계하지 않더라도 시장은 스스로 불량기업들을 도태시키는 법이다.
"우리는 정육점 주인이나 빵집 주인의 자비(慈悲) 탓이 아니라 그들의 영리욕 때문에 맛있는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다"는 영국의 도덕철학자 애덤 스미스(A. Smith, 1723∼1790)의 경고를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