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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인생을 한 편의 영화에 비유한다. 개인마다 서사를 들여다보면 파란만장에 새옹지마니 어쩌면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할 수 있겠다. 한국영화박물관의 기획 전시 '대사극장(DIALOGUE CINEMA)'은 한국 영화 100편의 대사를 한 편의 비디오 에세이로 묶어 또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반가운 발상과 실험이다.

"니가 너를 구해야지. 인생이 니 생각보다 훨씬 길어.(내가 죽던 날)", "나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 대신 애써서 해.(찬실이는 복도 많지)" 용기를 불어넣는 말에는 힘이 있다. 굳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진심은 전달되는 법. 하지만 인생이 어디 뜻대로 되는가. 상처받고 상처준다. '부당거래'에서 주양(류승범 분)은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라며 권력의 위선을 고백한다. '기생충'의 기택(송강호 분)이 읊조린다. "가장 완벽한 계획이 뭔지 알아? 무계획이야." 계획조차 사치인 빈곤의 자화상으로 이만한 대사가 없다.

녹록지 않은 세상, 각성제 같은 대사도 있다. "살아보니께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한 거더라." 두 친구의 우정과 배신, 성공과 실패를 그린 '짝패'에서 필호(이범수 분)가 태수(정두홍 분)에게 던지는 돌직구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구덩이를 더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메기'에서 경진(문소리 분)은 의심이 난무하는 삶에 대항할 지침을 준다.

우리 사회의 갈등은 괴물로 진화했다. 배경에 권력 게임이 된 정치가 있고, 자본으로 사람 사이의 격차를 벌리는 경제가 있다. 전세 사기, 묻지마 살인…. 억울한 사람이 많아지고, 상식이 작동하지 않는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내부자들' 이강희(백윤식 분)의 대사는 현실로 페이드인 할 때 훨씬 생생하다.

지혜가 담긴 대사는 자상한 인생 멘토다. 갓생(god+生:부지런하고 성실한 삶)을 강요당하는 사회지만, 가끔은 걍생(그냥 살다)도 필요하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 탈북 천재수학자 리학성(최민식 분)의 대사가 사뭇 따뜻하다. "이야 이거이 문제가 참 어렵구나, 야, 내일 아침에 다시 한 번 풀어봐야겠구나 하는 여유로운 마음. 그것이 수학적 용기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