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념적 지향을 초월해 조국 광복을 위해 연대했던 독립운동가들은 해방정국의 혼란기에 이념과 정당으로 갈라졌다. 민주와 공산진영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됐고, 같은 진영내에선 주도권 잡기에 목숨을 걸었다. 테러와 암살의 시대가 활짝 열렸고, 역사의 진행이 휘청거렸다.
우익 지도자 송진우는 신탁통치 찬성파로 지목돼 암살됐다. 반탁인사인 그는 제한적 신탁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찬반의 세상에서 중도의 공간은 없었다. 좌익 거물 여운형은 1947년 극우파에 의해 암살됐다. 1949년 민족주의자 김구가 경교장에서 안두희에게 암살되면서 테러 정치는 정점을 찍는다.
암살의 배후는 지금껏 모호하다. 범인들이 입을 닫고 허술한 공권력은 작동하지 않았다. 암살의 결과로 정적은 물론 같은 진영에서도 이득을 본 세력이 있기에 추측이 난무하며 미궁에 갇혔다. 김구 암살의 배후로 지금껏 이승만, 좌익, 미군이 거론된다. 해방정국은 만인 대 만인의 이념 투쟁의 장이었다. 70~80년 전 과거의 아픈 역사이다.
67세 노인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칼로 공격했다. 15세 중학생은 돌멩이로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을 가격했다. 노인은 변명문을 남겼다는데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소년은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는데 정신병력을 주장한다. 노인과 소년의 정치테러는 '계획'과 '우발' 사이에서 모호하지만 범죄의 동기는 분명하다. 정치다. 칼과 돌멩이를 들도록 부추긴 극단적 진영 정치다.
다시 해방정국이 거론된다. 기원이 불투명한 정치적 만인 투쟁의 시대에 노인과 소년이 테러범으로 등장했다. 박근혜 탄핵과 조국사태로 광장에서 맞붙었던 진영의 전위들이 온·오프라인에서 정치 일진으로 암약하며 정적을 향해 좌표를 찍고 적대를 선동한다. 진영에 따라 밥상이 나뉘고, 교단이 갈리고, 세대가 충돌한다. 혀에 칼날을 세운 어른 때문에 급기야 아이까지 돌멩이를 들었다.
해방정국의 정치투쟁은 독립 조국의 정체성을 다툰 과정이었다. 이상향의 충돌이었던 셈이다. 지금의 정치 대립은 순수한 권력 투쟁이다. 격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진다. 극소수의 집요한 권력욕이 민주주의를 타락시키자 중우(衆愚)팬덤이 활개를 친다. 정치(政治)가 정(正)을 잃자 순식간에 국민이 흩어졌다. 정치테러를 벌인 노인과 소년 사이에 더러운 정치가 있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