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 틈새에서 동네서점은 전멸 위기다. 반경 1~2㎞ 안에 동네서점이 있다면 행운일 정도다. 마실 가듯 들르는 서점이 아니라 마음먹어야 방문하는 서점이 됐다. 서점에서 책의 표지와 목차, 내용을 훑어보고 온라인 주문하는 일은 낯설지 않다. 쇼룸처럼 이용하는 소비자, 서점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야속하지만 어쩌겠나. 이런 와중에 윤석열 정부가 최근 민생토론회에서 '도서정가제 개선안'을 내놓으면서 또다시 논란이다. 도서정가제는 서점 간 과도한 할인 경쟁을 방지하고 출판물의 최소 제작비용을 보전해 창작자와 출판사를 보호해 출판 생태계를 안정화한다는 취지다. 영어권을 제외한 독일·프랑스·네덜란드·스페인 등 대부분의 출판 선진국에서 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3년 도서정가제를 도입해 2014년부터 3년마다 제도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출판사는 책을 발간할 때 정가를 표시해야 하고, 서점은 정가의 10%와 각종 마일리지를 포함해 최대 15%까지만 할인할 수 있다.
정부가 지역 영세서점에 한해 할인 한도를 풀어주고, 웹툰과 웹소설 등 전자출판물은 도서정가제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한다. 출판계는 "동네서점은 대형서점보다 매입원가 자체가 높은데 어떻게 더 할인하란 말이냐", "헌법재판소가 전자책 도서정가제 적용 예외를 기각했는데 정부는 6개월 만에 뒤집나"라고 깊은 한숨이다. 웹툰·웹소설계에서는 "획일적인 규제가 풀려 다행"이라며 일단 반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창작자 권리가 약해지지 않을까", "출판물 부가세 면세 혜택도 사라지나" 하는 염려도 크다.
동네서점 주인장들은 하루하루 분투기를 쓰고 있다. 동네서점은 꽃집과 카페, 문구·소품점 등과 숍인숍으로 변신하면서 생존 중이다. 예약제 공유서점 간판을 달고 독서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약사가 주인인 서점부터 독립영화관 서점, 게스트하우스 서점, 한옥 서점까지 '뜻밖의 컬래버'가 그래도 다행이고 반갑다. 대형서점에 장르·순위별로 진열된 베스트셀러가 아닌 예쁜 인생책 한 권 발견하는 기쁨, 동네서점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 아닐까. 근본적인 고충을 외면한 어설픈 정책은 출판 생태계를 위태롭게 한다. 책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닌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공재이자 문화자산임을 각성해야 한다. 남아있는 동네서점에 폐업 공지문이 붙는 일은 사절하고 싶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