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야간 포함 총 489명 졸업식 참석

이민·가정 형편·사고 등 여러 사연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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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남인천중·고등학교에서 열린 2023학년도 졸업식에서 한 졸업생들이 옆 학생들과 어깨를 두드리며 그간의 어려움을 격려하고 있다./김용국기자yong@kyeongin.com

31일 오후 2시께 인천 미추홀구 학익동 남인천중·고등학교에서 평균 연령 65세 만학도들의 졸업식이 열렸다. 학교 대강당은 고운 한복과 정장을 차려입은 졸업생들과 이들을 축하하러 온 가족, 친구들로 붐볐다. 졸업식이 진행되던 도중 “엄마, 멋있어!”라며 응원하는 아들의 우렁찬 목소리에 장내는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올해로 개교 40주년을 맞은 남인천중·고등학교는 어린 나이에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성인들을 위한 학교다. 이날 중학교 212명, 고등학교 277명 등 총 489명이 졸업장을 품에 안았다. 오후 2시엔 주간반 학생들의 졸업식이, 6시엔 야간반 졸업식이 진행됐다.

졸업식
31일 오후 2시 인천시 미추홀구 학익동 남인천중고등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 참여한 이종남(57)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2024.01.31 /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은 이종남(57·경기 안산시)씨는 “공부는 남동생 3명에게 시켜야 한다”는 부모님의 말에 고등학교에 합격하고도 입학을 포기했다. 어린 시절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남편과 이번에 함께 졸업했다. 이씨는 “동네에서 혼자서만 고등학교에 가지 못해 무척 서러웠는데 늦게나마 꿈을 이루게 되어 기쁘다”며 “안산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게 됐는데 늦었지만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고 말했다.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6남매의 맏아들로 태어난 이성기(71·인천 연수구)씨는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녔지만 집안 사정이 어려워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가정을 이루고 자녀들도 모두 분가하면서 다시 배움에 대한 갈증이 일었다고 한다. 그는 “학교에 다니던 와중에 넘어지는 사고를 당해 지팡이 없이는 걷기 어려웠다”며 “학우들과 선생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편한 몸으로 학업을 끝마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포대학교 보건행정학과에 합격했다.

졸업식
31일 오후 2시 인천시 미추홀구 학익동 남인천중고등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 참여한 오옥자(71)씨. 2024.01.31 /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

45년 전 미국인 남편을 따라 이민을 간 오옥자(77·인천 미추홀구)씨는 남인천중·고등학교에 다니기 위해 홀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4년 동안 혼자 한국에서 지내야 했지만, 가족들의 응원 덕에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오씨는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했다는 것이 항상 부끄럽고 아쉬웠는데 먼저 이 학교에 다닌 동생의 권유로 한달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며 “미국에 다시 돌아간다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야간반 졸업식에선 1988년 서울 장애인올림픽 탁구 금메달리스트 김광진(69·경기 성남)씨가 중학교 졸업장을 품에 안았다. 소아마비로 사회적 편견에 부딪힌 그는 중학교를 중도에 포기해야 했다. 탁구 선수로서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값진 성과를 얻었지만, 학업을 이어가지 못했다는 것이 내내 아쉬웠다고 한다.

그는 낮에는 현역 탁구선수로 활동하고 밤엔 학교에서 공부했다. 김씨는 “탁구로는 세계 최정상 자리에 서봤으니, 이번에는 공부로 최정상에 오르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며 “낮에 운동하다 밤에 공부하려니 눈이 감기기도 했지만 새로운 것을 배워가는 재미에 즐겁게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인천중.고 졸업식
31일 남인천중·고등학교에서 열린 2023학년도 졸업식에서 한 졸업생들이 선생님들에 대한 고마움을 하트표시로 나타내고 있다./김용국기자yong@kyeongin.com

졸업생들은 하트가 그려진 종이를 높게 들고 선생님들을 향해 “사랑합니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윤국진 교장은 “무엇보다도 값진 졸업장을 받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어려운 상황에도 학업을 이어가는 열정에 무척 감동했다”며 “이곳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인천시와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배움의 의미이자 힘”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