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 한동훈, 금고형땐 세비 반납 등 약속
정략냄새 짙고 법제화 대신 논쟁거리 머뭇
보통 사람수준 하방해 민생 대변해야 변화
국회 지배하고 있는 민주당만 가능한 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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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주필
지난번 칼럼에서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에게 국회의원 특권 철폐로 총선 승부를 보라고 권했다. 흉기 테러를 당한 제1야당 대표의 헬기이송이 특혜 논란으로 번질 정도로 공정에 목마른 민심을 포착하라는 권유였다. 어느 당이든 먼저 하면 공정 이슈를 주도할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국회의원 특권 폐지 공약 시리즈를 이어가는 중이다. 금고형 이상 확정시 재판 기간 중 수령한 세비 반납, 불체포특권 폐지를 약속했다. 국민 상식에 근접하지만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표적이라 정략의 냄새가 짙다. 여기에 국민 중위소득 수준으로 국회의원 세비 인하를 더했다. 국민의 반국회 정서를 겨냥한 의제이다. 그런데 공약이 아닌 사견이라며 유권자의 반응을 간 보는 중이다. 국회의원특권 폐지가 총선 화두로 올랐지만, 국민의힘과 한 위원장은 법제화 대신 논쟁 수준에서 머뭇대고, 민주당과 이 대표는 아예 제안도 반응도 없다.

현재의 정치로는 나라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는 국민의 판단은 명확하다. 정치개혁의 공감대는 깊고 넓은데, 국회의원 개혁 없이는 한 걸음도 뗄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자명하다. 국회의원 특권 폐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됐다.

300명의 국회의원이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손수 운전하며 저자에서 보통 사람들과 섞여 국회로 출근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국회의원과 시민들이 눈 맞추고 인사하며 먹고사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만원 버스에선 교통대책을 고민할 테고, 시장에서 물가와 경제를 생각할 테고, 휴가 나온 사병에게 장병 복지를 물어볼 테고, 국밥집 사장의 어두운 얼굴에서 고금리의 고통을 짐작할 수 있을 테다. 국회와 국민 사이에 매일 수천회의 타운홀 미팅으로 민의가 소통되는 일상이 이어질 것이다.

국회의원의 동선이 보통 사람의 일상과 겹쳐야 가능한 일이다. 세비 인하와 보좌진 축소는 국회의원의 삶을 보통 사람의 수준에 하방시키는 현실적인 수단이다. 중위소득 기준이 과하다면 약 1억5천만원의 절반이라도 깎아보자. 7천만~8천만원 연봉으로 보통 사람들의 삶을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보좌진으로 의정 활동을 수행한다면 3D업종에 버금가는 격무이다. 공적 의무감 없이 밥벌이나 명예만으로는 수행하기 힘든 '성직(聖職)'이 된다. 대신 성직 수행자의 자부심으로 진정한 헌법기관으로 독립할 수 있다. 명예뿐인 고된 공직을 이어가려 목숨 걸고 매달릴 이유가 없어진다.

현실에서 국회의원은 선거 때나 한번 볼까 말까 한 특별한 사람들이다. 총선이 끝나자마자 300명만 쓰는 국회 의원회관에 갇힌다. 운전기사 비서관 등 9명의 보좌진의 극진한 섬김을 받으며 후원금을 받고 1억5천만원의 세비는 해마다 누적된다. 볼펜 하나 종이 한장까지 세금으로 지원받고, 어디로 행차하든 모든 교통편을 1등석으로 제공받는 1등 국민으로 보통 사람들과 격리된다. 공천만 받으면 양당 기득권 정치체제에서 1등 국민의 지위를 이어갈 수 있으니, 공천권을 쥔 당 대표에 충성한다. 초선들은 공천권자의 돌격대가 되고 다선들은 십상시가 되려 용을 쓴다. 300명의 소망이 공천권을 쥐거나 받는 것뿐이니 거시적 민생은 정략적 사시에 왜곡돼 고사한다.

국회의원 특권 폐지는 총선 승패를 떠나 대한민국 정치 정상화를 위한 선언이다. 주도권은 한동훈이 잡았다. 민주당은 대통령 월급부터 깎아보라고 딴청이다. 이럴 게 아니다. 국회의원이 보통 사람 수준으로 스스로 하방해 치열하게 민생을 대변하면 다 바뀐다. 위로는 대통령과 장차관, 아래로는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달라진 국회의원을 따를 수밖에 없다.

한동훈은 행정부를 가진 여당의 공약은 실천이자 현금이고 민주당의 공약은 약속이자 어음이라 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지배하는 국회는 다르다. 한동훈이 말하면 계획이고 이재명이 나서면 입법이다. 민주당이 헌법과 국회법 개정으로 국회의원 특권 폐지를 입법으로 실현하자 나서면 한동훈의 주도권은 무색해진다. 국회의원 특권 폐지는 민주당만 할 수 있는 특권이다. 망설일 이유가 무엇인가.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