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배지' 코앞에 있는데 무시
산후조리원·도우미 가격 천차만별
낮은 의료수가 '산과·소아과 기피'
1년간 경험… 출산율 복합적 문제
곧 총선, 근시안적인 공약은 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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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출산율 저하로 대한민국이 소멸한다는 위기감이 높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저출산 대책을 마련했다. 양육은 물론 교육, 집 장만까지 다양한 지원책을 제시하고 있다. 심지어 출생기본소득 아이디어까지 나왔다. 그렇다고 해서 출산율이 획기적으로 증가할지는 의문이다. 작년 봄 외손녀가 태어났다. 지난 한 해 동안 필자가 경험한 사례를 소개한다.

#1. 대중교통에 임산부 배려석이 있고 임산부 교통비 지원은 알고 있었다. 부끄럽지만 임신 여부는 육안으로 식별하는 줄 알았다. 임신을 표시하는 분홍색 배지가 지급된다는 것은 딸이 아이를 가진 후에 처음 알았다. 그때서야 그 배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배지를 착용한 임산부가 코앞에 서있는데도 태연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임산부에 대한 사회적 배려는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2. 딸이 임신을 하자 선배 엄마들은 산후조리원부터 예약하라고 조언했다. 2주일에 200만원인 곳도 있고 2천만원 가까운 곳도 있었다. 위치와 제공되는 서비스에 따라 요금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그 차이가 열배라는 사실은 놀랍다. 능력과 가성비를 고려해서 자신에게 알맞은 조리원을 택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부모의 재력에 따른 차별을 걱정하는 부부는 출산을 심각하게 고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산부인과 진찰비는 의료보험이 적용된다. 정부 지원금도 있다. 제왕절개 수술비용도 20만원 수준이었다. 출산 후의 소아과 진료비도 몇백원에 불과했다. 당장 큰 부담은 아니었다. 다행이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하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낮은 의료수가는 산과(産科)와 소아과의 전공의(專攻醫) 지원을 기피하게 만든다. 의사가 줄면 의원도 귀해진다. 산부인과가 없는 기초자치단체가 속출하고 있다. 병원 감소도 저출산의 원인이다. 의료정책도 검토해야 한다.

#4. 육아도우미의 일당은 최소 10만원 이상이다. 한국인 출퇴근 도우미는 월300만원, 입주하면 월400만원을 훌쩍 넘는다. 딸의 경우는 파트 타임 도우미가 주 2회 도와주고 나머지 날들은 아내가 책임진다. 그 외에 기저귀와 분윳값도 만만치 않다. 웬만한 월급수준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외국인 도우미를 도입하자는 주장을 이해하게 되었다. 육아휴직이 없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한다. 휴직을 하면 수입이 줄어들고 경력관리도 걱정된다. 공공기관에서는 정책적 배려가 가능할 수 있다. 사기업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중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

위 사례가 지난 일 년간 겪은 일이다. 유아 양육비는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는 교육비가 더 큰 문제로 다가올 것이다. 딸이 유치원에 다녔던 30년 전에도 사립유치원 비용이 부담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영어유치원이 유행이라고 한다. 영어유치원 비용은 월200만원에 육박한다. 유치원이 끝이 아니다. 학년이 올라가고 경쟁이 심화될수록 다녀야 할 학원은 많아지고, 사교육비는 더 늘어날 것이다. 공교육의 정상화 없이는 해결이 거의 불가능하다. 먼 후일의 일이지만 교육이 끝나면 취업, 결혼과 주거비용의 문제를 걱정하게 된다. 현실적으로 신혼부부가 부모 도움 없이 아파트 전세금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양육, 교육, 결혼, 주거비용 등이 저출산의 이유임은 기존의 보도를 통해서 잘 알고 있었다. 막상 내 자신의 일로 다가오니 말 그대로 남의 일이 아니었다. 경제적 부담 외에도 인생관의 변화도 중요하다. 자녀를 낳고 기르는 데는 부모의 희생과 헌신이 필요하다. 자기중심적으로 변해가는 세태에서는 자신의 삶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는 것도 출산을 기피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출산율 저하는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선거를 앞두고 즉흥적인 인기영합식의 공약은 곤란하다. 근시안적인 접근보다는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구체적인 재원확보 방안을 수립하여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비전을 제시하는 정당을 기대한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정당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