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안된 정치세력에 국민 관대하지 않아
텐트는 임시거주… 성사땐 정치 도움될까?
기존문법 아닌 진실된 차별성으로 승부해야
과거에도 빅텐트 구상은 대부분 용두사미였다. 당장 진영으로 갈라서 싸우던 이질적 세력이 통합하는 작업이 쉬운 일은 아니다. 대통합의 러브샷을 외치다 하루아침에 삿대질하는 관계로 돌아서 얼굴을 붉히기 일쑤다. 통합 후의 주도권까지 의식해야 하니 셈법이 복잡해진다. 무엇보다 신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대는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급속히 줄어든다. 이 현상을 사표방지심리라고 탓하는 사람도 있지만 검증되지 않는 정치실험에 대해 국민들은 그리 관대하지 않은 것이다. 텐트는 임시 거주용. 캠핑이 끝나면 텐트를 접고 집으로 돌아가는 법.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비난하며 '친정'을 떠나 작은 천막을 쳤지만 요행히 선거에서 살아남은 정치인들은 금방 표정관리에 들어간다. 조용히 복당의 절차를 밟아 목소리를 낮추고 제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텐트가 성사되면 과연 우리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될까? 합종연횡을 시도하고 있는 신당세력들은 하나같이 양당정치를 비판하면서 대안정치를 내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제3지대의 신당답게 새로운 정강 정책을 내세우고 참신한 정치문화를 혁신할 수 있는 인물로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야 하지 않는가? 별반 차별성도 없는 정책마저 뒤섞어 놓고, 정치지향이 서로 다른 세력을 끌어모아 '빅텐트'라는 레토릭으로 포장하는 것이 새로운 정치라 할 수 있을까. 자칫 선거 국면에서 기승을 부리는 양비론에 편승하여 유권자를 기만하는 정치놀음에 불과할 수도 있다.
빅텐트 정치연합론은 새정치의 명분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자기모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왜냐면 한국의 여야 정당은 대부분 이념 성향이 혼재된 정치연합이며 포괄정당이다. 정강·정책이나 인적구성, 지금까지의 정치적 실천을 보면 포괄적인 정치연합 세력임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현존하는 빅텐트인 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을 부정하고 다시 '빅텐트'를 세우겠다는 구상이기 때문이다.
이질적 세력의 통합을 추구하는 빅텐트의 득실도 분명하다. 앞으로는 '산토끼'를 잡은 듯 싶지만 정작 '집토끼'가 달아나는 일도 다반사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캠프는 보수적이라는 비판을 극복하기 위해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빅텐트 전략으로 선거에 임했으나 트럼프의 백인결집을 막지 못하고 낙선했다. 선거 캠페인은 기동전이다. 후보들은 현장에서 유연하고 신속하게 판단해야 하는데 연합조직은 이질적 정치성향 때문에 갈등이 자주 벌어지고 복잡한 의사결정구조로 인한 지체 현상도 생긴다. '해불양수(海不讓水)', 어떤 물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포용의 정신이 빅텐트 정치의 귀감일 수 있겠다. 해불양수나 빅텐트는 레토릭이다. 자폐적이거나 배타적인 진영정치를 반성케 하는 비유일 뿐 역사적으로 실현된 바 없는 상상적 비전에 불과하다. 새 정치를 표방하는 정치인들이라면 실패가 예정된 정치공학이 아니라, 오히려 낡은 정치 문법과 결별하겠다는 용기,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하는 창의적 정치로 승부해야 한다.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