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면 '내일'을 사거나 빌려야
앤드루 니콜 감독의 영화 '인타임'
기업인·직장인들에게 추천하고파
'상영 109분' 시간의 소중함 깨닫게
제법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따금씩 뇌리에 맴도는 영화가 하나 있다. 그 세계관은 디스토피아 자체지만, 소재와 설정은 매우 참신하고 창의적이다. 짜릿하고 기괴한 설정 때문인지 고루할 틈이 없고 여운도 길다.
- 인류는 유전자 조작으로 불로장생하게 됐다.
- 세상의 유일한 통화(화폐)는 '시간'이다.
- 인간의 성장(노화)은 25살에 멈추고 1년의 시간이 주어진다.
- 할머니와 엄마, 딸의 실제 나이를 외모론 가늠할 수 없다.
- 왼쪽 팔뚝에 새겨진 생체시계는 '여명' 시간을 알려준다.
- 시계가 0이 되는 순간 심장마비로 즉사한다.
- 시간을 가져도 총에 맞거나 치명상을 입으면 죽는다.
- '부유존'과 '슬램존'의 타임존(경계)이 존재해 왕래가 불가하다.
세상을 지배하는 건 시간이다. 신의 섭리, 그런 거 없다. 커피 1잔은 4분, 권총 1정은 3년, 스포츠카 1대는 59년. 음식과 교통비, 집세 등 삶에 필요한 모든 건 시간을 지불해야 가질 수 있다. "아빠가 30분 줄게. 맛있는 거 사 먹어"가 일상이다. 자신의 수명도 예외가 아니다.
부자는 몇 세대에 걸친 시간을 가지고 영생불사를 누리는 반면, 가난뱅이는 응당 주어질 것 같은 '내일'을 노동으로 사거나, 누군가에게 빌리거나, 아니면 훔쳐야 한다. 시간은, 오늘의 불가결한 도구지만 내일엔 죽음의 사신이 된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만큼 정신없이 지냈다"라는 멘트나 상황따윈 불가하다. 그랬다간 죽음뿐! 하여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생체시계를 챙겨본다.
나이란 불치병을 앓던 시한부 인류가 유전공학을 통해 불멸의 과제였던 불로(不老)를 25살에 얻고 영생을 누린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종언. 영화 속에선 가슴 떨리는 순간을 "25살이 되던 날 맨 처음 한 일은 거울 앞에서 내 모습을 비춰본 거였어요. 이 모습이 내가 평생 동안 간직할 모습이니까요"라는 명대사로 풀었다. 생명체는 시간과 더불어 기능이 노쇠하는 진리를 시간 소유로 깨뜨리며 불멸의 꿈을 이뤘다.(단, 바보짓만 안 하면)
그 한편 세금과 금리, 물가 등을 올려 빈곤층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이를 통해 인구수도 조정한다. 시간이 없는 사람에겐 선택지가 적고, 시간을 가진 사람에겐 선택지가 널려있어 현실 세계와 구별이 안 될 지경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개 줬다. 영화는 자본주의 병폐인 격차와 불평등을 제대로 풍자한다. '시간이 곧 돈이고 권력이고 목숨'임을 이리도 살 떨리고 실감나게 그린 영화는 일찍이 없었다. 시간 소멸이 곧 육신 소멸이라, 초조와 처절·소름이 마구 뒤섞였다.
알아챘는가- 천재 입담꾼 앤드루 니콜 감독의 영화 '인 타임(In Time·2011)' 줄거리다. 무대는 인류가 노화를 극복한 2169년. 왜 이 해인지는 모르겠으나 2년 전 개봉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2: 물의 길'도 2169년이 배경이다. 우연의 일치, 의도적 기획-
필자는 인 타임을 재미있게 봤다. 스토리의 기승전결보다는 시간을 매개로 한 설정에 팍 꽂혔다. 세세한 묘사로 정보량이 넘쳐 복기해야 할 장면도 많다.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투영에 상영시간 내내 긴장 모드였다. 기업인(CEO)과 직장인은 물론 경제·경영·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픈 영화다. 시간이 돈이자 삶이란 진실을 격하게 보여줬다.
시중 평점은 좀 박하다. 아이디어(착상)는 좋지만 스토리 전개가 받쳐주질 못해 소화불량 영화란다. 질병 여부나 왜 25세에 성장이 멈추는지에 관해선 딱히 설명이 없다.
상영 109분이란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역설적으로) 깨닫게 해줬다는 측면에선 매우 경제적인 작품이다.
/김광희 협성대학교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