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적 긴장감 여전한 서해5도
한미일 협력 등 국제정세 시사점

한반도가 일본의 손아귀 안으로 들어온 실질적 계기가 된 러일전쟁이 개전한 지 8일로 꼭 120주년이다. 러시아와 일본은 한반도 앞마당인 인천에서 전쟁을 개시하고 동아시아 패권을 다퉜다.
최근 한·미·일과 북·중·러 구도가 심화되고 있는 '지정학의 귀환' 시대 속 120년 전 인천 앞바다에서 일어난 러시아와 일본의 충돌은 한반도, 특히 최근 남북 군사적 긴장이 커진 인천의 지정학적 위치를 다시금 일깨우고 있다.
러일전쟁은 1904년 2월8일 오후 일본 군함들이 인천 제물포에서 중국 뤼순항으로 이동하려는 러시아 군함 '카레예츠호'를 어뢰로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이른바 '제물포해전'이다.
제물포로 피항한 카레예츠호는 이튿날 순양함 '바랴크호'와 함께 영흥도와 무의도 일대 해상에서 일본 군함 14척과 교전을 벌였으나 결국 패했다. 제물포해전에서 러시아군은 일본군에 항복하지 않고 자국 군함들과 상선을 스스로 침몰시켰다.
러시아 군함의 침몰과 동시에 일본군이 제물포로 상륙해 서울과 경운궁(덕수궁)을 점령하고, 용산에 진지를 구축했다. 당시 인천의 일본인들은 제물포해전 승리를 기념한다며 2월9일을 '인천의 날'로 제정해 해마다 축제를 벌이기도 했다.
러일전쟁은 이날부터 1905년 9월까지 한반도 내륙과 인근 해역, 중국 만주·요동 일대에서 1년 넘게 이어졌다.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한반도 제해권을 장악했다. 같은 해 11월17일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당한 을사늑약, 5년 뒤 한일 강제병합으로 이어진다. 대표적 열강이던 러시아 제국은 러일전쟁의 패배 여파와 뒤이은 사회주의 혁명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인천 앞바다에서 침몰한 러시아 바랴크호 '깃발'(가로 2.5m, 세로 2m)은 일본군이 건져 자유공원 인근 인천향토관 전시실에 전시하다가 해방 이후 인천시립박물관이 소장하게 됐다. 러시아는 2010~2014년 인천시로부터 바랴크호 깃발을 임차해 자국에서 순회 전시를 했다. 일본의 전리품이던 바랴크호 깃발이 러시아 입장에선 적에 항복하지 않은 해군 전쟁 영웅을 상징했다.
2013년 11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방한 중 인천 연안부두 광장을 찾아 제물포해전 러시아 추모비에 헌화할 정도로 큰 의미를 두고 있는 사건이 120년 전 인천 앞바다에서 발생했다. 러일전쟁 120년이 되는 현재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지정학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때마침 7일 유정복 인천시장이 군사적 긴장감이 커지고 있는 서해 5도의 연평도를 방문했는데, 일본 언론사 기자들까지 동행할 정도로 관심이 컸다.
군사전문가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는 '황해문화' 2023년 겨울호(121호)에 쓴 비평에서 최근 국제 정세 변화를 '지정학의 귀환'이라 칭하며 "한·미·일 군사 협력 촉진과 그 반작용으로써 북·중·러 결속이 진행된다면 지난 30여 년간 북한을 관리해온 한국 외교의 기본 틀이 붕괴되고 안보 비용이 급격히 증대될 위험이 크다"고 분석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