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대표하는 풍경으로 차례상, 떡국, 세배, 귀성·귀경 행렬을 꼽을 수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문 차량들과 인파가 넘치는 기차역에는 귀성의 설렘과 귀경의 아쉬움이 가득하다. 뉴스도 신문도 앞을 다퉈 경부선이나 호남선을 중심으로 설 풍경을 보도로 내보낸다. 이에 비해 서해안고속도로나 장항선이 보도되는 경우는 드물다. 장항선은 현재 천안에서 익산, 군산까지 이어지는 철도 노선으로 일제강점기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의 사설 철도로 시작됐다.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에 대륙 침략을 염두에 둔 일제의 철도 정책이 남북의 축을 중시하는 X자형 종관철도였기에 경부선이나 호남선에 비해 사설 철도로 출발한 장항선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장항선은 뜯어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노선으로 경부선이나 호남·전라선만큼 붐비지는 않지만, 한적한 여행 코스로 제격이다. 장항선이 지나는 기차역마다 관광지와 문화유산들이 있고 각 지역을 대표하는 예술인과 학자들이 있다. 이를 장항선의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장항선의 시발역인 천안에는 동양철학자 도올 김용옥이 있다. 동양학의 대가인 벤자민 슈워츠 교수에게 '왕선산 주역'을 연구하여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다음으로는 장항선이 지나는 고덕의 인물로 원로 미술사학자 최완수 박사가 있다. 그리고 보령의 인물로 대표적인 한국 현대문학 연구자인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가 있다. 장항선이 지나는 길목마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각 분야의 학자들이 있다.
그뿐 아니라 장항선 문화권인 아산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있다. 아산 출신의 무관이자 부자였던 방진의 사위가 되어 처가 재력을 바탕으로 온축의 과정을 거칠 수 있었고 결국 역사적 인물이 됐다. 충무공 이순신은 본관이 덕수 이씨인데,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이기영도 이 덕수 이씨 가문의 인물이다. 또 장항선이 지나는 예산 인근의 신양에는 '김일부 정역'에 정통한 주역 학자이자 충남대 총장을 역임한 이정호 박사가 있다. 모두 장항선이 낳은 인물들이다. 보면 볼수록 장항선은 매력이 넘치고 유서 깊은 노선이다.
평소 무관심했던 장항선의 인물들이 이 정도이고 지금도 인재가 적지 않을 것인데, 영호남 여야 정당의 총선 영입 인재들은 경부선과 호남선 올라타려 안간힘이다. 여야 정당에서 정치 논리로 영입하는 인재들에 대한 설 민심이 싸늘한 이유이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