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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정 정치2부(서울) 차장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했다. 먹고 살기 어려운 지경에 처하면 인심이 흉흉해진다는 뜻이다. 사회가 삭막해졌다는 말로 요약하기도 한다. 그러니 다른 이의 '곳간'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정확히 진단해야 해결책을 내든, 흉흉해진 민심을 달래든 처신을 바로 할 수 있다.

이번 설 물가는 살인적이었다. 우리집의 경우 친정과 시댁에서 애호박전이 사라졌다. 시댁은 장손 집이라 손님이 많다. 명절엔 항상 과일을 박스로 사던 시부모님이 이번엔 정부 할인쿠폰이 붙은 배 3개들이, 사과 3개들이만 집어오셨다. 애호박전이 사라진 차례상은 처음 보고, 제수용 3개만 있는 과일상자는 결혼하고 처음본다. 아마 이 얘기를 대부분의 가정에서 공감할 것이다.

다만 정부는 생각이 다른 것 같다. 설이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 8일,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는 16대 성수품의 소비자가격이 1년 전 설 같은기간보다 3.2%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같은 수준'도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낮은 수준'이라니, 이번에도 국민이 보고 느낀 것 대신 '바이든·날리면'처럼 정부의 강변(强辯)을 믿어야 하나. 어딘가 더 싼 게 있는데 내가 장을 잘 못봐서 그렇구나, 하고 자책을 해야 하나.

다행히 우리가 보고 느낀 것을 확인해주는 통계도 있었다. 한국물가정보는 전통시장 기준으로 차례상 비용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했다. 통계청도 각 품목별 통계에서 사과와 배가 10~20% 상승했다고 했다. 아마 시장 보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런 통계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누군가는 체감과 가까운 통계를 내는데, 정부는 체감과 동떨어진 통계에만 기댄 것이 문제가 된 적도 있다. 지난 정권에서 부동산 통계는 국민 감정을 상하게 하는 데 일조했고, 잘못된 정책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그리고 현 정권은 그것을 '통계조작'이라는 이름을 붙여 수사 중이다. 여기 이 시장 물가 통계를 내는 방법에도 토를 단다. 아둔한 통계인가, 목적이 있는 통계인가. 5천만의 곳간을 살필 방법도 못 찾는 것은 곳간에 별 관심이 없어서인가.

/권순정 정치2부(서울) 차장 s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