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 예산 책정 하세월… 멸실 우려
경기도, 예산 9억 들여 내달부터 진행
공설묘역에 봉안묘도 설치 예정
경기도가 '선감학원 인권침해사건'과 관련해 전국 최초로 피해자 지원에 나선 데 이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에서 정부에 권고한 희생자 유해발굴도 직접 맡는다.
진실화해위의 권고사항을 의무적으로 이행해야 하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하 과거사정리법)이 시행됐음에도 행정안전부가 선감학원 유해발굴 관련 예산을 세우지 못한 상태다.
이에 유해발굴을 더 늦출 경우 부식 등 유해 멸실이 우려되자,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직접 추진'으로 결단을 내렸다.
선감학원 인권침해사건은 국가폭력에 따른 아동인권침해사건으로 규명됐으나, 정부가 지원 등을 외면하면서 결국 지방자치단체인 경기도가 정부의 몫까지 책임을 다하게 된 셈이다.
경기도는 오는 3월부터 선감학원 인권침해사건 관련 유해발굴에 나선다. 이를 위해 예산 9억원을 예비비로 편성했고 약 1년 5개월간 발굴, 조사, 감식, 봉안 등을 추진한다. 발굴 대상지는 안산시 선감동 산37-1번지(2천400㎡)에 위치한 묘역이다.
이곳에는 약 114기의 선감학원 희생자 유해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며 진실화해위는 지난 2022년 9월과 지난해 10월 두 차례에 걸쳐 시굴에 나서 희생자 유해로 보이는 치아 278점과 유품 33점을 발굴하기도 했다.
당초 진실화해위는 지난 2022년 10월 선감학원 인권침해사건 진실규명을 하고 선감학원 운영 주체였던 경기도와 부랑아 정책을 했던 국가를 대상으로 피해자 지원 대책 마련, 유해발굴 등을 권고했다.
이에 김동연 지사는 관선 도지사 시절에 있었던 사건임에도 공식 사과하고 선감학원 피해자 생활안정지원금 지급 등을 결정했다. 그 결과, 13일 기준 진실규명 기자회견 당시 접수한 피해자(184명)를 훌쩍 뛰어넘은 214명이 신청했고 경기도 사례를 기반으로 부산시 등 다른 지자체도 국가폭력 피해자 지원 검토에 나섰다.
유해발굴의 경우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경기도가 행정적 지원을 하는 내용이었으며 지난해 9월 과거사정리법이 시행되면서 정부의 대책 마련에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정부는 현재까지도 어떠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고 시민단체의 반발은 이어졌으며 유해발굴은 기약 없이 미뤄졌다.
상황이 이렇자, 지난해 11월 김동연 지사는 "(유해발굴의 경우) 정부가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를 통해 공권력에 의해 유린당한 인권문제의 전형을 만들고자 했다"면서도 "(과거사정리법으로) 의무가 부여됐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때) 경기도가 하겠다"고 밝혔다.(2023년 11월10일자 2면 보도=김동연, 선감학원 관련 "정부 책임 다하지 않으면, 경기도가 하겠다")
국가폭력에 따른 인권유린사건이 선감학원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있는 만큼, 선감학원 유해발굴을 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피해자를 지원하는 첫 단추로 삼기 위해 정부의 움직임을 기다리겠다는 의미인 셈이다.
그러나 유해발굴에 손을 놓고 정부만 바라보기에는 공동묘역 토양 특성상 부식 등 유해 멸실이 우려됐고 경기도는 고민 끝에 직접 추진을 결정했다. 유해 발굴 이후에는 DNA 분석 등을 거쳐 공동묘역 인근에 위치한 공설묘역에 봉안묘도 설치될 예정이다.
마순흥 인권담당관은 "유해 발굴을 더 늦추면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경기도가 추진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며 "정부가 추후 예산을 편성한다면 검시 등에 있어 협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유해 발굴이 이뤄지면, DNA 분석 등을 통해 유가족을 찾고 유가족이 없다면 화장해 유골함에 넣어 인근 공설묘역에 설치할 봉안묘에 안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