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내면 입 틀어막히는 현실
법치국가서 전관예우 모순 허용
반민주정 인사 몰표 던지는 사회
독재국가 북한도 '민주주의' 참칭
자유·권리·평등 지켜지는지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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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한 국가의 민주성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형태라기보다는 그 공동체 구성원의 권리와 의사가 어떻게 재현되느냐에 달려있다. 군주정이나 귀족정의 정치 형태일지라도 그 안에서 구체적 삶을 살아가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 그들의 이해가 제대로 반영된다면 그 사회는 민주성을 달성하는 사회일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평등은 보장될 것이며, 경제적 불평등이 최소화되는 사회, 명백히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는 민주사회라고 말해도 좋다. 극단적인 전제정치 국가조차도 공화주의와 민주주의를 주장하지만, 그 사회가 근대 이전의 성왕 정치가 이루어졌던 군주정보다 더 억압적이라는 사실은 명백하지 않은가. 북한은 최고의 억압적인 독재국가임에도 여전히 스스로를 조선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참칭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정이며, 정치체계가 아니라 개인이 누리는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평등과 사회적 권리가 보장되는 정치정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달성한 사회이지만 갈수록 정치적 소외와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사회는 공화정일 수 없다. 형식적 법치는 정립되어 있지만, 그 법이 법을 독점한 집단에 의해 너무도 자의적이며 독단적으로 운영되는 사회라면 그 사회가 민주정이 아님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민주주의는 외적 체제가 아니라 그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들의 권리와 자유, 그들의 목소리와 삶이 어떻게 보장되느냐에 달려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낼 수 있는 공동체가 정의로운 사회이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빼앗긴 자를 노예라고 부른다. 자기 존재와 자기 말을 드러낼 수 없는 자들이 사는 사회는 체제와 무관하게 전제 국가이다.

나의 정치적 생각과 사회적 이해관계는 어떻게 정치적 목소리가 되어 재현되는가. 나는 자유인인가, 아니면 형식적이며 절차적 민주주의 안에서 나의 목소리가 반영된다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는가. 대통령의 모순된 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던 그 입이 틀어 막히고 강제로 추방되는 사회가 민주정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렇게 입이 틀어 막힌 자는 자유인일까, 아니면 노예일까. 우리 사회에서 법은 법을 독점한 이들이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배타적 권리일 뿐이다. 이 사회의 법치는 법을 소유하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를 배제하는 노예적 절차일 뿐이다. 사법 농단을 통해 무려 47가지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어떤 혐의도 인정받지 못했다. 심지어 그 수사와 기소를 맡았던 이들이 그에 힘입어 대통령과 그 여권의 실세가 되었으니 이 무슨 모순된 행태인가? 정치검찰의 독점적 행태와 배타적 권리 행사는 아무리 지적해도 부족할 정도다. 일부 정치검찰의 정치적 권력 독점과 배타적 행태가 이 사회의 민주성을 가장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음을 누가 부정할 수 있는가? 심지어 법권력은 경제적 이익조차 독점적으로 누린다. 어마어마한 전관예우의 폐단을 돌아보라. 전관예우라는 모순이 허용되는 사회가 어떻게 법치국가일 수 있는가.

한 줌의 이익에 현혹되어 자기 목소리를 왜곡하여 공화정을 배반하고, 반민주정을 옹호한다면 그가 어찌 자유인일 수 있는가. 이 사회의 민주성은 시민의 정치적 역량에 달려있다. 그 역량은 개인의 이기적 이해관계를 넘어 이 사회의 공화정과 민주주의 정신을 지켜내려는 결단력이다. 습관적으로 지지하던 정당이라서 그런 반민주정의 인사에게 몰표를 던지는 사회가 어찌 민주사회일 수 있는가. 우연히 주어진 배경에 따라 정치적 성향을 결정하는 그런 진부함 어디에 자유와 민주가 자리하는가. 민주주의는 나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공동체의 자유와 권리, 평등과 정의가 어떻게 지켜지느냐에 달려있다. 그렇지 않을 때 지금의 정치적, 경제적 자유와 권리조차 점차 축소될 수밖에 없다. 한 줌의 사회 경제적 이익 때문에 공동체를 해체시키는 행태를 묵인한다면, 오늘의 이 선택이 내일 나의 존재기반을 파괴시키는 독이 될 것이다. 이익을 생각하면 정의가 무너진다. 민주주의는 공화정 없이 불가능하다. 공동선과 공동체를 위한 정치적 선택이 개인의 자유와 권리, 나의 이해관계를 지켜내는 공화정을 가능하게 한다. 이를 위한 선택과 그를 위한 목소리가 모일 때 나의 자유와 권리가 지켜진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