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열악한 노동조건 알린 이들
문제 비판 직원 블랙리스트 올라
기업은 '선의 인사평가'라 하지만
채용불이익·노동자 통제 등 활용
규제하지 않는 정부 무책임 한몫

안은정-필진.jpg
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 늦은 저녁이었다. '내일 아침은 뭐 먹지?' 냉장고를 여니 텅 비어있었다. 마트를 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 그때 생각 난 것이 새벽 배송이었다. 검색으로 마음에 드는 쇼핑몰을 찾아 손가락 몇 번 까딱이니 장바구니가 가득 채워졌다. 손에 든 것은 없지만,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느낌이었다. 다음 날 아침, 배송된 물건들이 현관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 밖을 나가지 않아도 무겁게 들지 않아도 되는 손쉬움과 편리함에 기대어 종종 새벽 배송을 이용하게 되었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은지 해를 거듭할수록 새벽 배송 이용자의 수도, 시장 규모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시장 규모가 커질수록 업체들은 낮은 가격으로 더 빠르게 배송하기 위한 경쟁으로 뛰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업계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과로한 노동과 열악한 노동조건 등 좋지 않은 방향으로 말이다. 쿠팡 블랙리스트 사건만 봐도 그렇다.

최근 PNG 리스트, 일명 쿠팡 블랙리스트라 불리는 문건이 공개됐다. 그 문건에는 1만6천450명의 이름과 개인정보, 그리고 채용배제의 사유가 명시되어 있었다. 열악한 노동조건을 확인하고자 쿠팡에 단기 취업했던 현직 국회의원도, 쿠팡 관련 비판 기사를 쓴 언론인들도 대거 포함되었다. 어떤 노동자는 부당한 노동조건을 문제 제기한 이유로, 또 다른 노동자는 본사에 부당함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자신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유에 대해 알 수 없는 노동자도 있었다. 그렇게 1만6천450명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쿠팡 블랙리스트가 되었다.

쿠팡은 블랙리스트가 배제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인정하지만 직원들 보호를 위해 선의로 인사평가를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일부 기업들이 노동자를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한 명목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그 선의를 의심하게 된다. 어느 기업에서는 MJ사원으로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이름으로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명단은 채용 불이익, 차별, 괴롭힘 등 다양하게 노동자를 배제하는 근거로 활용되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작동되었다. 노동자들은 블랙리스트에 오르지 않기 위해 눈치보며 일하고 부당한 일에도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다. 결국 블랙리스트는 노동자들을 통제하고 권리를 침해하는 또 다른 이름이었다. 쿠팡의 사례 역시 마찬가지다. 현장에서는 '말 안 들으면 블랙리스트에 오른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회자 되었다고 한다. 노동자들은 계속 근무하기 위해서 스스로 위축되어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쿠팡은 노동자에게 무권리의 일터가 되어갔다. 과로한 노동으로 노동자들이 사망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해도, 찜통 같은 더위에 냉방기 없는 일터가 문제 되어도, 코로나19에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감염되어 사회적 문제가 되어도 쿠팡은 달라지지 않았다. 일했던 사람들이 입을 모아 근무환경, 휴게시간 등 노동조건에 문제를 제기해도 마찬가지였다. 쉽게 누군가를 채용에서 배제하고 그 자리에 또 다른 누군가를 채워 넣는 구조 속에서 쿠팡은 더욱 성장해가고 있었다.

샛별을 보며 로켓처럼 쓱 집 앞에 도착한다는 새벽 배송. 빠른 속도와 편리 뒤에는 밤을 지새우며 일하는 사람이 있었다. 배송 물품이 나에게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을 거치는지 이제는 헤아려보기도 쉽지 않다. 그 손에 배인 사람의 온기를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쿠팡이 무권리의 일터가 되는 것은 어쩌면 편리에 기대 사람의 온기를 잊어버린 모두의 무심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같은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해도 규제하지 않는 정부의 무책임 때문이기도 하다. 시민단체가 쿠팡 블랙리스트 문제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발하고 특별근로감독 실시를 요구하고 있다. 이번에는 제대로 책임을 묻고 해결할 수 있기를. 쿠팡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