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화박물관 제2회 다양성만화 전시 '형형색색'


'스낵컬처' 웹툰 속 독창적인 개성 뽐내는 작품 6편 소개… 4월21일까지
부부 일상·인간의 야만성·애착사물 등 소재… 작업과정·작가생각 선봬


만화 시장은 어느덧 흔히 휴대전화 등으로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소비할 수 있는 웹툰이 대세를 이루며, 과자를 먹듯 짧은 시간 내 가볍게 소비하는 이른바 '스낵컬처'라는 인식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러한 기류 가운데서도 작가의 개성과 자신만의 가치를 독창적으로 그려낸 '다양성 만화' 역시 꾸준히 탄생하고 있다.

한국만화박물관의 제2회 다양성만화 전시 '형형색색'은 상업성에 구애받지 않은 작품들이 저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각각 다른 주제를 가진 6편의 작품은 그림과 사진, 영상, 작업과정 등을 담은 스케치 등으로 다채롭게 바라보고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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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화박물관 제2회 다양성만화 전시 '형형색색' 작품들. '노인의 꿈'.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작품 '떼루아의 맛'(김연수·신이현)과 '노인의 꿈'(백원달)은 우리 주변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따뜻함과 삶의 소소한 행복을 떠올리게 한다.

'떼루아의 맛'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던 프랑스 남자 도미니끄가 '죽기 전 꼭 이루고 싶은' 농부의 꿈을 위해 가족과 함께 충북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포도농사를 짓는 이야기이다.

프랑스인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와인을 만드는 신이현 작가와 제주에서 소소한 일상을 그리고 있는 김연수 작가가 만든 이 작품에는 도미니크·신이현 부부가 농사를 지으며 겪는 일들과 소박하지만 풍요로운 모습들, 그 안에 담겨진 이들의 생각이 녹아있다. 도미니끄의 어머니가 물려준 알자스풍 부엌살림과 부부가 만든 와인, 일상을 찍은 영상과 사진이 따스한 그림과 잘 어우러진다.

'노인의 꿈'은 그림을 배워본 적 없는 심춘애 할머니가 자신의 영정사진을 그림으로 그리기 위해 윤봄희가 운영하는 미술학원에 방문하며 시작된다. 할머니의 꿈은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꿈으로 이어지며 결국 우리 모두의 꿈을 돌아보게 한다. 현실의 시간으로 과거를 그려내는 그림으로 차곡히 쌓여온 꿈과 가치를 담담하지만 감성적으로 펼쳐내는 이 작품은 마음 한편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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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화박물관 제2회 다양성만화 전시 '형형색색' 작품들. '적색목록'.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동물과 사물, 풍광과 경험 등 직간접적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 소재를 다룬 작품들도 인상적이다. '적색목록'(백영욱)은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과 인간의 이야기를 담은 그래픽 노블(문학적 구성과 특성을 지닌 작가주의 만화)이다. 뿔이 잘린 코뿔소의 살을 뜯어먹으려던 까마귀, 그들은 인간의 지독하고 잔인함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굵고도 진한 느낌을 주는 흑백의 그림은 등장하는 동물은 물론 이들에게 해를 끼치는 인간의 모습까지 강렬하게 보여준다. 배들랜즈큰뿔야생양, 도도, 나그네 알바트로스, 스텔러바다소 등 만화에서 보여주는 동물들은 인간의 이기와 야만성 앞에 스러져갔다. 전시장에 비치된 도톰한 만화책 한 권은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을 주며 한참을 그곳에 머물게 했다.

'나는 왜 버리지 못할까?' 사물이라는 소재로 개인의 서사를 풀어나가는 '하나의 사물'(맹하나)은 주인공 하나와 그에 얽힌 주변 사물에 대한 일화이다. 일반적인 도구가 아닌, 교감하는 '애착 사물'을 그려내며 관계성을 고민하게 하는 이 작품은 우리 주변에 있는 사소한 물건이 전하는 사유를 그린다. 실제 전시된 작가의 사물을 보며 작가 자신에 대한 생각, 더 나아가 나에 대한 생각까지도 들여다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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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화박물관 제2회 다양성만화 전시 '형형색색' 작품들. '미용실 스태프'.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이 밖에도 전 세계 사람들이 즐기는 보물찾기인 '지오캐싱'을 통해 소소하지만 값진 일상 속의 '보물'을 찾아내는 '어떤 탐험일지'(이루비)와 사회 초년생인 '신나리'가 '아무아트 헤어' 막내 스태프로 취업하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내용을 에너지 넘치게 풀어낸 '미용실 스태프'(마브로)도 만나볼 수 있다. 한국만화의 신선한 가능성과 깊이감을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4월 21일까지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