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여명 서울서 열린 추모제 참석
'先구제 後구상' 아직 국회 계류
"피해자 보호 가능한 특별법 개정을"
"집은 인권이다.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이다."
피켓과 국화꽃을 든 200여 명이 지난 24일 오후 4시께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 모였다. 인천 미추홀구에서 전세사기 피해로 신변을 비관하며 1년 전 세상을 떠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자리였다. 고인이 된 이웃을 위한 묵념으로 추모제는 시작됐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등이 모인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이날 '전세사기 희생자 1주기 추모대회'를 열었다. 추모제에는 인천을 비롯한 서울 강서구, 경기, 대전, 대구, 경북, 부산 등 전국의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참석했다.
미추홀구 등지에서 수백억원대 전세사기 행각을 벌인 '건축왕' 남모(62)씨로부터 보증금을 떼인 피해자 A(38)씨가 지난해 2월28일 숨지는 등 4명이 잇따라 생을 마감했다. A씨는 '(전세사기 관련) 정부 대책이 실망스럽고 더는 버티기 힘들다'는 유서를 남겼다.
이어 4월15일 20대 남성이, 같은 달 17일 30대 여성이 세상을 등졌다.
국회 본회의에서 '전세사기 특별법'(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되기 하루 전인 지난해 5월24일에도 4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건축왕 남씨는 최근 재판에서 사기죄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을 받았는데, 법정에선 사기죄 최고 형량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삶의 안식처여야 할 '집'이, 감당할 수 없는 '짐'이 되어, 전세사기의 지옥도가 펼쳐졌습니다. 아무나 임대하고, 아무렇게나 중개하고, 아무거나 세를 놓아도 괜찮은 나라에서 집으로 돈을 버는 이들에게, 세입자는 가장 쉬운 먹잇감이었습니다."(대책위)
추모대회에 모인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고, 세상을 등진 이들의 영정 앞에 국화꽃을 헌화했다.
지난해 6월부터 경매 유예, 우선매수권, 공공매입임대, 금융 지원 등을 골자로 한 '전세사기 특별법'이 시행됐다. 피해자들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선(先)구제 후(後)구상' 방안을 도입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선 구제 후 구상' 방안을 포함한 개정안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전세사기 피해자 손호범씨는 "전세사기 특별법이 얼마나 허술한지 '경락자금'(경매에서 집을 낙찰받을 때 지불해야 하는 돈) 대출은 어렵기만 하고, 우선매수권 사용법을 정확히 설명해 주는 기관도 없다"며 "전셋집 건물 외벽이 뜯겨 나가 차량이 파손되고 보일러 배관이 휘어져도 구청과 시청은 남의 일이라고 떠넘겨 의지할 데가 없다"고 호소했다.
안상미 대책위원장(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장)은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정부는 국가가 마땅히 지켜내야 할 국민의 주거 기본권과 재산권을 보호해달라"며 "피해자를 보호하고 피해 회복이 가능한 특별법 개정을 하루빨리 진행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보신각에서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까지 행진하며 특별법 보완 입법을 촉구했다.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