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701000275600027351

바둑의 본질은 아직도 미궁에 빠져있다. 도(道)·기(技)·예(藝) 등 바둑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장수왕이 보낸 첩자 도림과 바둑을 두다 국정을 소홀히 하여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개로왕 이야기나, 송나라 상인 하두강의 꾐에 빠져 아내를 걸고 내기바둑을 두다 아내를 빼앗긴 고려의 하급 관리 김두정의 어리석음과 비극을 노래한 고려가요 '예성강곡'은 모두 바둑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예성강곡'은 '고려사 악지'에 사연만 전할 뿐 노래의 내용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바둑은 오락·여가·교육·수련 등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은 마인드 스포츠로 나라의 명예와 자존심이 걸린 국제대회로까지 발전해 있다.

국가대항전인 제25회 농심배 세계바둑대회에서 지난 23일 또 하나의 진기록이 나왔다. 인공지능 바둑과 유사하다 해서 '신공지능'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한국바둑의 일인자요 세계바둑계의 최강자로 꼽히는 신진서 9단이 기적의 6연승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한국바둑을 구해내며 대회 우승의 신화를 썼다. 신진서 9단은 이번 승리를 포함, 16연승으로 이창호 9단이 보유하고 있던 14연승의 기록도 경신했다.

농심배 세계대회는 한·중·일에서 각각 5명의 국가대표 기사들이 출전하여 연승 방식으로 우승을 가르는 단체전인데 한국은 이번 우승으로 농심배 4연패를 달성하게 됐다. 경기 초반 중국의 셰얼하오 9단에게 7연승을 허용하고 4명이 연패를 당한 상황에서 신 9단은 일본의 일인자 이야마 유타, 중국의 자오천위, 커제, 딩하오 9단을 연파하고, 중국 랭킹 1위 구쯔하오 9단과의 최종대국에서 우변 싸움에서 역전을 허용하며 위기에 빠졌으나 경기 중후반에 재역전에 성공하며 흑으로 불계승을 거뒀다. 신 9단은 이창호 9단의 5연승에 이어 2번째 '상하이 대첩'이란 진기록을 남기게 됐다.

나라가 의대 증원 문제로 전공의 집단사직과 의료대란을 겪고 또 공천 문제로 정치권이 몸살을 앓고 국민적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상황에서 나온 신 9단의 기적의 우승은 오랜 가뭄 끝의 단비 같은 소식이다. 기득권 다툼이나 보기도 듣기도 싫은 정쟁들이 바둑판처럼 정석과 묘수로 정리되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러려면 이번 총선에서 각 분야의 고수들이 뽑혀야 한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