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집세·단품 등 '푸어 마케팅' 성공가도
'올드타운' 최상의 관광상품이자 추억인데
노후도시 재건축 움직임… 재개발 능사 아냐
'만원의 행복' 동네가 핫 플레이스로 주목되고 있다. 노인들의 천국인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 상권인데 유튜브에는 '미친 가성비의 성지', 혹은 '갓성비(신이 내린 가성비)' 상권으로 소개되고 있다. '국민 MC' 송해 선생이 즐겨 찾았던 S식당은 국밥 3천원, 소주 3천원이었으며 옆집 H통닭의 프라이드치킨 한 마리는 5천원, 뒷집에서는 선지해장국이 4천원이었다. 낙원상가 4층 실버영화관에서는 입장료 2천원에 종일토록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국밥 혹은 해장국에 잔술로 추위를 녹이고 고전 영화들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해가 저문다. 이곳도 인플레 폭탄을 맞았지만 건재하다.
그런데 어르신들의 해방구에 변화가 감지된다. 작년 10월 한 달 동안에 57만여 명이 이곳을 찾았는데 20∼30대 손님들이 44%였다. 레트로(복고풍)한 분위기에다 근래 물가상승 압박에 구매력이 떨어진 젊은이들에게 안성맞춤인 것이다. 그렇다고 동일한 시간대에 노인들과 젊은이들이 몰리는 것은 아니다. 낮엔 노인들이, 밤에는 MZ세대가 이곳을 접수해 탑골공원 일대의 가게들은 낮부터 밤까지 성업 중이다. 탑골공원 상권의 낮과 밤은 다른 세상이다.
이곳에는 춥고 배고픈 어르신들에게 봉사 차원에서 영업을 하는 점포도 있지만 절대다수는 영리 목적의 자영업체들이다. 모 일간지의 조사에 따르면 작년 10월 기준 점포당 월평균 신용카드 매출은 탑골공원이 2천916만원으로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81%였다. 후미진 골목의 허름한 점포들이라 집세가 낮을 뿐 아니라 상품도 단일 품목 위주의 박리다매로 승부를 거는 것이다. '푸어(poor) 마케팅'의 비결이다.
전국 구도심 곳곳에는 서민 대상의 유사한 동네들이 산재해 있다. 사회관계망(SNS)을 통해 명성(?)을 얻는 노포(老鋪) 맛집들도 있어 빈티지 패션의 선남선녀들이 고담 시티(?) 탐험에서 즐거움을 만끽한다. 한국 최초의 상설시장인 서울 광장시장은 최근 3년 사이에 매출이 5배 이상 격증했으며 철거가 임박한 힙지로(을지로3가) 일대의 밤은 불야성이다. 작년 말 윤석열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과 함께 어묵을 즐기던 부산 깡통시장은 인근의 자갈치시장과 함께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낡은 도심의 소상공인들은 주머니 얇은 서민층을 상대로 생계를 영위하지만 해 뜰 날을 고대하며 열심히 살아간다.
구시가지 상권은 물가안정에도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추억의 거리들이 더 많이, 더 빨리 없어질 예정이다. 지난달 31일 국토교통부가 경기도의 분당, 일산 등 1기 신도시를 포함한 전국의 노후도시 108곳, 215만 가구 재건축을 조기에 완공하기로 했다. 지난 5일에는 서울시가 서울을 글로벌 탑5 도시로 만든다며 2025년 착공을 목표로 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계획을 밝혔다. 또 어떤 지자체가 어디를 개발한다고 나설지 궁금하다.
올드타운은 고유의 문화와 음식을 체험할 수 있는 최상의 관광상품이다.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는 유럽에서 땅값이 제일 비싸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체코의 수도 프라하의 구시가지에서는 매년 수백만명의 관광객들이 먹고, 마시고, 쇼핑을 즐긴다. 이탈리아의 중소도시 쏘렌토의 토끼굴 같은 골목에는 쇼핑객들이 넘쳐나며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구시가지는 1년 내내 인산인해이다. 세계문화유산인 일본의 교토 구시가지, 중국 상하이 올드타운도 성업 중이다.
국내의 세계문화유산은 16곳이나 구시가지가 지정된 사례는 한 곳도 없다. 반만년 역사 타령이 민망하다. 구도심 리뉴얼도 좋지만 수많은 자영업자들은 평생직장을 잃는다. 역대 정부가 천문학적 세금을 풀어 사회적 약자 구제에 팔을 걷어붙이나 조족지혈이다. 재개발이 능사가 아니다.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