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훈련 참여 최저연령 16세 지적
고용·교육부 '근로 아닌 학습' 변명
실습제도 실상은 '값싼 인력' 취급
영화 '다음 소희'처럼 숱한 사고 고려
노동자성 인정·애매한 잣대 거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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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수 노무사
특성화고 노동인권교육 강의를 여러번 했다. 처음 출강하기 전날이 떠오른다. '요즘 아이들'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우습지만 퍽 긴장했었다. 모두가 잠들면 어떡하지? 난처한 질문을 하면? 섣부른 고민이 무색하게도 학생들은 높은 집중력을 보여줬다. 조는 학생이 없었다고 할 순 없지만 대부분 '노동인권'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아르바이트 휴일수당에 대한 현실적인 궁금증부터, 사회생활에서 갈등을 처리할 때의 딜레마에 대한 고민까지 앳되지만 진지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당연한 일이다. '노동인권'은 그들에게 눈앞에 닥친 현실이기 때문이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마이스터고, 일반고 직업반과 마찬가지로 졸업 전 '직업계고 현장실습'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그런데 60년대 산업체의 인력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현장실습제도는 그 이후 수십 년간 실습 기간과 규제 정도만 대동소이하게 바뀌었을 뿐, 미성년자인 학생들을 '값싼 노동력'과 '취업률'의 숫자로 여기는 최초의 목적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현장실습은 영화 '다음 소희'의 바탕이 된 콜센터 실습생 홍수현 님의 죽음, 요트 바닥의 따개비를 제거하기 위해 혼자 잠수했다가 숨진 홍정운 님 사건, 자동차 공장에서 하루 10시간 넘게 일하다 뇌출혈로 쓰러진 김민재님 사건, 그 외에도 세상에 기록되거나 기록되지 않은 크고 작은 고통과 상처를 남겼다.

한국의 직업계고 현장실습제도와 일학습병행제도에 대해, 이달 초 '국제노동기구(ILO) 협약·권고 적용에 따른 전문가위원회(CEACR)'는 ILO 협약 제138호를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협약 제138호 제3조는 '청소년 건강·안전·도덕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 경우 취업 최저연령은 18세 미만이어서는 안된다'라고 규정한다. 위원회는 이를 근거로 한국에서 직업훈련 등에 참여하는 최저연령이 16세인 사실을 지적했으며, 현장실습생에 대한 안전보장과 충분한 훈련 감독이 부재한 상황을 우려했다. 현장실습 제도가 남긴 숱한 사고들을 고려하면 오히려 늦은 지적이다.

ILO 보고서에 대한 고용노동부와 교육부의 합동 변명은 "현장실습제도는 근로가 아닌 학습 중심"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입장의 주체가 교육부와 고용노동부 양 부처인 점에서도 알 수 있듯, 현장실습 등은 학습과 노동이 결합된 과정이다. 아니, '다음 소희' 홍수현양이 매일 배정된 콜 수를 채울 때까지 퇴근하지 못했던 것처럼 실상은 학습보다는 노동에 방점이 찍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정부도 현장실습 등이 노동이며, 근로자와 다를 바 없는 법적 보장이 필요하다는 점은 이미 알고 있다. 지난해 3월 이른바 '다음 소희 방지법'이라고 불린 직업교육훈련 촉진법(이하 직촉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 내용은 학생으로서 현장실습생의 신분을 특별히 규정하거나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직촉법이 준용하는 근로기준법 규정을 강제근로 금지, 직장 내 괴롭힘 금지 등까지 큰 폭으로 확대하여, 실습생도 근로자에 준하는 보호를 받게 하자는 내용이다. 정말로 현장실습이 학습 중심이라면, 노동자가 아닌 실습생에게 근로기준법을 넓게 적용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정부 입장은 현실과 정책마저 도외시하는 면피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끼이고 애매한 신분은 책임과 보호의 사각지대를 만든다. 현장실습생들은 여러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으면서도 야근 수당은 못 받고 값싸게 일한다. 산업체는 실습생에게 지급될 최저임금 중 약 40%만 부담하면 되니 실습생을 최대한 활용하려 한다. ILO를 반박할 땐 신속하게 입을 모은 교육부와 고용노동부는 현장실습생 산업재해에 대해서는 각자의 소관이 아니라며 믿을 만한 현황조사와 통계조차 작성하지 않는다. 현장실습이 정말로 학습이라면 교육부가 책임지고 노동관계법령을 적용하지 않아도 무방할 만큼, 국제 기준에 맞게 제도와 과정을 개편 또는 폐지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실습생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여 성인 근로자보다 더 두텁게 보호하는 것이 맞다. 애매한 잣대로는 '다음 소희'를 막을 수 없다.

/유은수 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