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Q 평균이하 인지·사회적응에 '느린 학습자'
지적장애 해당 안돼 제도적 지원 사각지대
평생교육지원 조례 개정 진단검사 등 추가
연합회 발족, 변화 주체로 나선 부모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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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경기도의회 여성가족평생교육위 부위원장
우리 사회에는 항상 우리 곁에 있었음에도 주의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그 존재를 알아챌 수 없는 이들이 있다. 경계선 지능인이 그렇다. 경계선 지능인은 표준화된 지능지수(IQ)가 평균지능(85~115)에 미치지 못하는 71-84 사이에 해당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지적 장애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인지기능 및 사회적응 능력이 떨어져 '느린 학습자'라 부르기도 한다.

2023년 공개된 국회입법조사처의 '경계선 지능인 현황과 향후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IQ 정규분포도 상 경계선 지능에 해당하는 인구 비율은 13.6%로, 경기도의 경우 최소 95만에서 최대 190여 만명에 이른다. 이들은 인지 능력 저하로 학령기와 청소년기에는 학습 및 교우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반복된 부정적 경험은 무기력이나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또 성인기에는 사회생활의 부적응과 낮은 업무 이해능력으로 인해 구직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장애정도 판정기준'에 명시된 지적장애 기준(지능지수 70 이하)에 해당하지는 않아 제도적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최근 들어 경계선 지능인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과 사회적 논의가 점차 확산되고 있지만 생애주기별 체계적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한계는 여전하다.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맞춤 직업 교육과 고용서비스 지원이 전무하다시피 한 탓에 이들은 취업 정보를 구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역량을 요구하는 취업 시장에서 구직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설령 취업이 된다 하더라도 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과 감정을 파악하는 사회인지 능력에 제한이 있어 직장생활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전 생애에 걸쳐 다양한 어려움을 겪는 경계선 지능인의 삶의 질 향상과 자립을 위해서는 체계적인 맞춤형 지원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아동기부터 청소년기까지는 인지 치료와 진로 탐색, 성인기에는 직업훈련과 고용유지를 위한 지원 등 생애주기에 따른 맞춤형 교육과 지원이 제공될 필요가 있다. 또한 경계선 지능인의 자립을 개인과 가족의 책임으로 한정하는 사회적 인식 개선도 시급하다. 독일의 돈보스코에서는 16~25세의 경계선 지능인 청년들에게 직업체험을 비롯해 다양한 직업 교육과 상담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돈보스코의 궁극적인 교육 목표는 청년들의 자립이지만, 그것은 '취업을 기반으로 한 경제적 독립'이 아니라 다양한 지원시스템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 이뤄지는 자립이다.

성과 중심주의, 성적 지상주의가 만연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느리거나 다른 사람은 배제되거나 뒤처진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개인의 차이와 다양성에 주목하며 장애인이든 경계선 지능인이든 개개인이 삶의 동기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생태계를 구축할 때, 경계선 지능인의 '자립'이 시작될 수 있다. 장애와 비장애, 그 경계를 넘어서는 삶은 배제와 차별보다 공존과 환대를 꿈꾸는 사회구성원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최근 경기도에서는 '경기도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에 관한 조례' 개정을 통해 경계선 지능인 조기 진단을 위한 진단 검사와 관련 평생 교육을 확대 지원하고 자조 모임과 가족 모임에 대한 지원을 추가했다. 이번달 19일 전국느린학습자 부모 커뮤니티 연합회 발대식이 경기도의회에서 열렸다. 그동안 느린학습자 부모들은 학교에서의 학습 문제뿐 아니라 학교와 사회의 인식 및 제도 개선의 부족으로 자녀들이 학교폭력, 착취 등의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걱정해 왔다. 이번 전국 느린학습자 부모 연합회의 발족은 느린학습자들이 다음 세대의 한 일원으로서 학교뿐 아니라 졸업 후 취업, 결혼과 일상 생활에서의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적인 지원과 사회적인 인식 전환 및 체계를 만들어 내는데 부모들이 변화의 주체로 나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연합회의 발족을 계기로 자녀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던 부모들을 각성시키고, 느린학습자들의 사법적인 지원책과 일상의 자립을 위한 지원들이 적극적으로 모색되기를 응원해 본다. 빠르게 가야하는 결과주의의 사회 속에서 겨울이기만 했던 느린학습자 부모들의 마음에도 이제 따뜻한 봄이 오기를 기대한다.

/조용호 경기도의회 여성가족평생교육위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