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안전 기지'로 활용 돼야
기분따라 규칙 바뀔땐 신뢰 잃어
어떤 관계보다도 길고 누적적 고려
한팀 될때 경쟁 등 이겨낼 힘 생겨

다양한 입시 전형이 생겨나고 진로 또한 다양해진 현재의 시점에서도 여전히 많은 학부모들은 자녀가 소위 좋은 대학에 가기를 원하고 성공적인 삶을 혹은 성취를 이루기를 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좋은 대학에 가거나 화려한 직업을 갖게 되는 것만이 절대적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학교를 다니면서 자신이 이루어낸 작은 성공들의 맛을 알기는 나 또한 원하는 바이다.
최근에 학부모들을 많이 만나고 입시에 관한 혹은 공부에 관한 고민을 듣다 보면 항상 자녀의 성적 그 자체나 주변 환경의 문제점 등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한다는 특징이 있다. 즉, 외부적 요인 혹은 보이는 숫자에 집착하여 자녀가 갖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학교 성적이라는 것은 다소 복합적인 요인의 결과로 이러한 접근만으로는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없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자녀의 성적을 끌어올리는 근원적인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점은 자녀와의 정서적인 교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서적 안정과도 연결되는 개념으로 생애 초기에 부모는 일관되며 민감한 양육을 통해서 자녀에게 부모가 일종의 '안전 기지(secure base)'로 활용이 되어야 한다. 즉, 아이와 모든 것을 단순히 하는 물리적인 가까움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그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아버지들 중에 이런 경험들이 다들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분명히 주말에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일상을 보냈는데도 자기 전에 아이가 하는 이야기는 "아빠, 우리 오늘 못 놀았잖아"라는 말이다. 정말 황당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실제로 아이와 아버지는 하루 종일 함께 했지만 정서적 공감을 나누는 시간 보다는 정말 그냥 몸만 함께 있고 장보기, 외식하기 등 해야 하는 일들에 파묻혀서 지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자신이 느끼는 것과 본 것에 대해 매우 명확한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관적이며 민감한 양육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우선, 많은 부모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비일관적인 양육을 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서 일정한 규칙 없이 아이를 대하여 오늘은 괜찮았던 일이 내일은 금지가 되는 일이 된다. 이러한 단순한 규칙조차 가정에서 비일관적으로 다루어진다면 아이는 부모에게 신뢰를 잃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민감한 양육이라는 것은 아이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려 노력하고 세심하게 살피는 것을 말한다. 사춘기 자녀를 둔 아버지의 경우 어떤 아버지는 아이의 얼굴만 봐도 오늘 기분이 좋은지 또는 안 좋은지를 알 수 있지만 어떤 아버지는 아이의 퉁명스러운 반응에 혼을 내거나 같이 짜증을 내는 경우도 발생한다. 같은 자녀의 모습인데 이렇게 다른 두 아버지의 모습은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일까? 바로 전자의 아버지는 아이와 긴 시간을 지내면서 단순한 신호만 아이에게서 받아도 그것이 무엇인지 쉽게 해석해내고 편안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이러한 능력을 갖는 것은 부모와 자녀 관계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관계보다도 길고 누적적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러한 아버지의 자녀는 아버지에게 정서적으로 의지하며, 자신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언제든지 자신의 편이 되어줄 것이라는 강한 신뢰가 있는 것이다. 이렇듯 부모와 자녀는 한 쌍의 팀이 되어서 관계를 유지할 때 아이 또한 학업 스트레스와 치열한 사회에서의 경쟁 등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새 학기가 시작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설레는 일이다. 이번 자녀의 새 학기에는 학부모도 아이와 진정으로 함께하는 새로운 부모의 학기를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정명규 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