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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나훈아가 27일 은퇴 의사를 담은 자필 편지를 공개했다. 마이크를 내려놓는다는 일이 이렇게 용기가 필요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며 "박수칠 때 떠나라는 쉽고 간단한 말의 깊은 진리의 뜻을 따르고자 한다"고 밝혔다. 4월에 시작하는 마지막 공연 타이틀도 '2024 고마웠습니다-라스트 콘서트'라니 진심인 듯싶다. 팬들은 충격에 빠졌고 언론은 진의 파악에 분주하다.

나훈아는 수식어가 거추장스러운 전설이다. 1966년 데뷔한 이후 그의 말대로 "한발 또 한발 걸어온 길이 반백년을 훌쩍 넘어 오늘"에 이르렀다. 발표한 앨범이 200장이 넘고, 800곡 이상의 자작곡을 포함해 취입곡이 2천600곡에 달한다. 전쟁세대의 부모와 산업화·민주화 세대의 아들딸이 대를 이어 그의 명곡들을 애창하고, MZ세대들은 '테스형'에 열광했다.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대중성은 압도적이고 예술적 카리스마는 독보적이다.

현악기의 음이 시간이 갈수록 깊어지듯, 가수의 노래도 세월이 쌓일수록 깊어진다. 국보급 가수들이 공백기는 있을지언정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장수하는 이유다. 폴 매카트니는 팔순이 넘은 고령에도 해외 공연을 쉬지 않는다. 프랭크 시나트라는 78세에 대박 앨범 'Duet'을 발매했다. 82세로 그가 숨지자 클린턴 대통령, 레이건 전 대통령,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못지 않을 대한민국 국보급 스타로 손색없는 나훈아다.

나훈아와 동년배인 송창식은 최근 한 예능 프로에 출연해 "노래를 부를 때 한 번도 똑같이 부른 적이 없다"고 밝혔다. 듣는 귀도 마찬가지다. 세월에 따라 같은 노래가 달리 들린다. 청년 송창식의 호흡 짱짱한 '고래사냥'에 피가 끓었다면, 나이 든 송창식이 읊조리는 '사랑이야'에선 위로를 받는다.

나훈아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노래하려 훈장까지 거부한 사람이다. 노래에 진심이고 완벽한 무대를 추구한다. 2020년 코로나로 격리된 국민들을 위해 출연한 KBS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가 대표적이다. 완벽한 가창과 무대, 명품 신곡으로 비대면 TV콘서트를 전국민 공연장으로 만들었다.

완벽한 무대에 대한 강박에 은퇴할 마음을 먹었나 싶다. 그래도 대중은 "세상이 왜 이래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들어" 외치는 나훈아가 영원한 현역이길 원한다. 목소리와 무대에 힘이 빠져도 나훈아는 나훈아일테니 그렇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