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창고출납 꼭 맞았다는 내용
정직함 높이 평가·성현의 품성 부합
나를 속이지 말라는 '대학'속 무자기
남은 출장비 반납 등 실천한 사람들
사마천이라면 역사에 기록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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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수천년의 세월을 견뎌온 고전을 읽다 보면 도대체 저자가 왜 이런 기록을 남겼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되는 대목을 자주 만난다. 이를테면 사마천의 '사기' '공자세가'에는 '공자는 어린 시절 가난하고 신분이 낮았지만 성장하여 계씨의 창고지기로 일할 때는 창고의 출납이 꼭 맞았고, 사직리(司職吏)가 되어 가축을 돌볼 때는 가축이 번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비슷한 기록이 유학의 고전 '맹자'에도 보인다. 맹자는 '공자가 일찍이 위리(委吏)가 되었을 때는 회계를 꼭 맞추었고 승전(乘田)이 되었을 때는 소와 양을 잘 키웠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니까 공자가 젊은 시절 창고지기로 일할 때는 창고의 출납이 꼭 맞았고 가축을 돌볼 때는 가축이 잘 자랐다는 내용인데, 이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맹자가 성현의 면모를 알려주는 실례로 제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사마천은 역사책에까지 기록했을까. 짐작건대 창고의 출납이 꼭 맞는다거나 소와 양이 잘 자랐다는 것은 창고의 물건이나 소와 양에게 먹일 사료를 빼돌리지 않았던 공자의 정직함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일 것이고, 그런 평가는 당시에는 자신이 맡은 일을 공자처럼 정직하게 처리하는 사람이 드물었다는 배경이 작용했을 법하다. 그러니까 맹자는 정직함이야말로 성현의 조건에 부합하는 품성이라고 생각했고, 사마천은 한 사람의 정직한 행동은 역사책에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 하겠다.

정직과 관련 내가 늘 떠올리는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이 시험 문제를 특정 문제집에서 냈기 때문에 동네 서점에 가서 해당 문제집을 구해서 공부하면 어렵지 않게 백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나와 내 친구들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성현의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소하지만 정직을 지킨 일들은 도처에서 만난다.

내가 아는 어느 어른은 회사 업무로 출장 갔다 오면 쓰고 남은 출장비를 반드시 회사에 반납했는데 그 때문에 아내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동료에게 피해를 주는 답답한 사람이라는 핀잔을 듣곤 했다. 또 언젠가 무인편의점에서 가격에 0이 하나 빠진 채로 잘못 결제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제값을 주고 사기 위해 구매 수량을 10개로 입력하여 물건을 사 간 여성이 있었다는 사실이 편의점 주인에 의해 알려지기도 했다.

유학의 고전 '대학'에는 '무자기(毋自欺)'라는 말이 나온다. '무(毋)'는 하지 말라는 금지사이고 '자기(自欺)'는 스스로 속인다는 뜻이므로 무자기(毋自欺)란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는 말이다. 그저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뜻이면 이해하기 쉽겠지만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말(정직이 과연 정책일 수 있느냐는 의문은 접어두더라도)을 포함하여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말은 매우 흔한 격언이다. 이를테면 칸트의 경우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로 그것이 정언명령에 어긋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 칸트의 정언명령은 어디까지나 타인을 속이지 말라는 뜻이다. 하지만 '무자기'는 남을 속이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나'를 속이지 말라는 뜻이다.

나를 속이지 않는다는 말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실천하기는 더욱 어렵다. 남을 속이는 것과는 달리 나를 속이는 일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했는지 동기까지 모두 알고 있다. 그런 나는 그 자체로 정직할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속인단 말인가. 그런데도 속일 수 있다면 이때의 나는 '정직한 나'와는 다른 '속이는 나'로 분열된 나라 해야 할 것이다. 결국 나를 속이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정직한 나'가 있어야 하며, '정직한 나'를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나를 속이지 말라는 격언은 붙을 곳이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출장비를 반납한 어른이나 물건을 제값 주고 사 간 사람은 분명 '정직한 나'를 잘 지켰고 그로 인해 '무자기'를 몸소 실천한 사람들이라 하겠다. 사마천이라면 분명 역사에 기록하고 싶었을 게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