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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의 누'는 한국 신소설의 첫 번째 작품이다. '혈의 누(血의 淚)'는 '피눈물'이란 뜻으로 어법상 혈루(血淚) 또는 홍루(紅淚)라고 해야 하는데, 일본식 한자 표현방식을 따르고 있다. 제목이 말하듯 '혈의 누'는 난감한 소설이다.

'혈의 누'의 작가 이인직(1862~1916)은 개인의 영달과 입신출세를 위해 자진해서 친일의 길을 걸은 사람이다. 39세 나이에 관비 유학생으로 1900년 9월 동경정치학교에 입학한다. 동경정치학교는 마쓰모토 군페이가 1898년 고등문관·외교관·신문기자 등을 양성할 목적으로 세운 3년제 학교다. 동경정치학교 재학 시절 고마쓰 미도리에게 국제법을 같이 공부한 인연으로 이인직은 구한말 내각의 농상공부대신이 된 조중응과 각별한 관계를 맺게 된다.

이런 경력으로 이인직은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 육군성의 한국어 통역관으로 임명된다. 이때 '이그재미너' 신문 종군기자로 잭 런던도 합류했다. 잭 런던은 SF이자 정치소설인 '강철군화'(1908)로 유명한데, 종군기자 시절의 경험을 살려 '조선 사람 엿보기'란 여행기를 남겼다. 이때 통역관 이인직과 종군기자 잭 런던이 만났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신소설과 SF가 만난 셈이다.

이인직은 일본군 통역관 경력을 앞세워 출세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1906년 '국민신보' 주필이 되고, '만세보' 주필을 거쳐 1907년 '대한신보' 사장에 취임한다. 신소설 '혈의 누'는 이 시기에 집필하고 발표한 소설이다. 1906년 7월부터 10월까지 '만세보'에 총 53회에 걸쳐 연재했고 1907년 광학서포에서 초판을, 1908년 같은 출판에서 재판을 찍었다. 그가 이완용의 비서가 된 것도 이즈음이고, 이완용을 보필하여 친일의 길을 걷다 생을 마쳤다.

'혈의 누'는 청일전쟁을 배경으로 한 신소설로 옥련이 일가의 수난과 재회를 다룬 작품이다. 현재 1907년 초판본은 없고, 1908년 재판본이 지난달 28일 코베이 옥션에서 2억5천만원에 낙찰됐다. 종전 최고가는 1억6천500만원에 낙찰된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이었다. '혈의 누'가 귀중한 작품이며 자료이나 이런 사연을 가지고 있어 한국 근대문학 작품 가운데 최고가를 경신했다는 소식이 그저 반갑지만은 않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