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비지정문화재' 특집기사 묶음집
40년 전 출간된 책… '개정판' 필요해 보여
신도시·인구유입 등 흐려지는 지역 정체성
포천서 발견된 유산·새로운 문인 조명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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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
서가에서 장호원 출신의 작가 이인직의 '혈의 누' 영인본을 찾다 1984년 '경인일보'에서 펴낸 '내 고장의 맥'을 발견했다. 1990년대 초 수원의 헌책방에서 구입한 것이니 벌써 30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 당시는 지역사·향토사에 관심이 많을 때였다. '황해문화'에서 진행한 신태범 인하대 의대 명예교수와 대담한 녹음테이프를 풀어 원고로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역사와 향토사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 내친걸음에 고일의 '인천석금(1955)'을 빌려 제본하고, 신태범 박사의 '인천 한 세기: 몸소 지켜본 이야기들(1983)'도 구해 읽었다. '내 고장의 맥'도 이 과정에서 읽은 책이다.

'내 고장의 맥'은 '경인일보'·경기도가 공동으로 기획한 것으로 경기도 및 인천 지역에 산재한 '비지정문화재'를 찾아 정리한 특집 기사들을 한데 묶어 낸 책이다. 경기도 출신의 인물 또는 경기도에 묘역이 조성된 역사적 인물 54명과 비지정문화재 33건을 다룬 도전적인 기획물로 '경인일보'의 저력을 보여준 책이다.

당시에는 매우 재미있게 읽고 또 큰 도움이 되었으나 세월이 지나 머리가 굵어지고 반백이 된 지금 40년 전에 나온 책을 다시 보니 이제는 '내 고장의 맥' 개정판을 펴낼 때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4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인문학 분야의 연구가 상당 부분 진척이 되어 '내 고장의 맥'의 보완 작업이 필요해졌고, 경기도의 인문지리적 여건 변화로 새로운 관점에서 새롭게 추가되어야 할 부분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경기도 신도시들의 등장, 수도권 전철 노선의 확대, 외곽순환도로의 증대 등 교통 여건의 발달 그리고 수도권 인구집중과 김포·고양 등의 사례에서 보듯 경기도임을 포기하려는 도시들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물론 서울과 인접한 도내 도시들이 서울이 된다고 해서 드라마틱한 변화 같은 것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전철이 닿는 수도권 도시들과 경기도는 이미 준(準) 서울이기 때문이다. 도내 주요 도시들이 교통망의 발달과 신도시의 등장으로 이미 서울화하거나 메트로폴리스가 되고 외부 인구 유입이 많아졌기에 현재 경기도의 정체성은 존재하지 않거나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경기도는 경기(京畿)란 이름이 말하듯 서울의 주변 지역을 뜻한다. 왕조 시대 경기는 왕경(王京)을 보호하는 근본이 되는 곳(根本之地, 四方之地) 또는 왕의 교화가 먼저 미치는 곳(王化所先)으로 매우 중시됐다. 경기라는 제도는 중국 한(漢) 이래 지속된 전통으로 왕(황제) 또는 서울을 정점으로 하는 정치제도와 세계관의 소산이다.

경기도에 연고를 둔 유력 가문들도 많은데 수원(수주) 최씨·인주(인천) 이씨(이자겸, 이인로 등)·파평 윤씨·이천 서씨 등이 대표적이다. 왕조시대 경기도는 왕실을 보호하고 뒷받침하는 물적 기반이었는바, 여주 일대는 문정왕후의 사적 소유지로 그가 대규모 불사를 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토대였다. 남양주의 궁집이나 정조가 만든 신도시 수원 화성 등을 보면 경기도는 서울에 버금가는 공간이면서 서울을 위해 존재하는 지역이었던 것이다.

반면 최근 포천의 사례에서 보듯 경기도의 문화적 가치와 전통이 새롭게 발견되고 있다. 선조의 12번째 왕자인 인흥군의 장남 낭선군 이우는 서예와 금석학 등의 분야에서 큰 성과를 낸 17세기 예술가이자 금석문의 대가로 포천시 양문리에 그의 묘와 신도비가 있다. 또 포천 왕방산 인평대군의 묘는 옛날부터 제왕지지로 소문이 난 곳이었다. 인평대군은 낙산 근방에 살았는데, 공교롭게도 그의 집터가 이승만 대통령의 사저인 이화장이다. 이밖에 용인시 남사면에는 '옥루몽' 작가 남영로가, 화성시에는 문체반정의 희생양이자 문인이었던 이옥이 있다.

이처럼 경기도에는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문인들과 문화유산들로 차고 넘친다. 21세기형 두 번째 '내 고장의 맥'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