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브랜드·디자인 가격 강조
아름다움, 노동가치 상회 부도덕
수많은 디자이너·생산·수송자…
문득 그들의 손·발 기억하고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을 보지 않고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며 걷거나 옆쪽으로 화려하게 늘어선 면세점 상가의 상품들을 바라보며 걷는다.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바라본다. 누구나 알만한 익숙한 이름의 브랜드에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까지 온갖 상품들이 면세점 구역 양쪽으로 화려하게 펼쳐져 있다. 닿지 않는 것에는 경탄 아니면 경멸이라고 했던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그런 명품 브랜드들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천만원 넘는 가격의 상품들이 이렇게 많다니. 브랜드가 다르지만 같은 종류의, 평소에 내가 마트에서 사는 상품들의 가격에 0자가 하나씩 더 붙어 있다. 혹은 두 개. 면세가임에도.
하지만 다니면 다닐수록 빠져드는 매력, 아름다운 상품들-그래서 호칭도 명품이다-그 매력에 점차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뭐가 뭔지 몰랐지만 계속 보게 되니 알 것 같았다. 아 저게 마감이 좋고, 색이 좋고, 디자인이 좋고, 아름답구나. 빛나는구나.
무거운 수레를 끌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휘황찬란한 아름다움에 넋이 나가 있다가 문득 생각에 잠긴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가격이 올라갈수록 아름다움도 올라가는 것일까. 누구는 브랜드 값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디자인 값이라고 하고 누구는 AS가 완벽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유명하고 잘 팔리는 브랜드일수록 광고판의 크기도 커지는데 가장 큰 광고판은 건물 3층 높이의 거대한 화면으로 되어있다. 그 커다란 화면에서 황금빛 물결이 파도처럼 쏟아지다가 모래알처럼 부서지며 그 가운데서 서서히 상품이 등장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장면에 고개를 들고 한참을 쳐다보았다. 압도하는 크기, 압도하는 빛, 압도하는 가격, 그리고 압도 당하는 고객이 있다. 그런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상품들이 수백미터에 달하는 이 공항 면세구역 전체를 채우고 있다.
하지만 다시 돌이켜, 아름다움의 가치가 인간노동의 가치를 지나치게 상회하는 것은 부도덕하다고 느낀다. 평범한 노동자가 한달 내내 일해 번 돈으로도 닿을 수 없는 생활용품의 아름다움이란 그 자체로 가치 중립적일 수 있는가. 그러다 문득 내가 또 구닥다리 고루한 생각만 하고 있구나, 생각한다. 수많은 디자이너들 속에서 경쟁하고 살아남은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고가의 디자인과, 수많은 소재 중에서 가장 고급의 소재가 만나, 가장 비싼 곳에서 가장 비싼 모델들과 광고를 찍고 상품을 생산한다면 과연 가장 비싼 상품들이 되겠구나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 현란한 자본주의의 광휘 안에서도 최고의 디자이너뿐 아니라 그와 경쟁했던 모든 디자이너들, 그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미대생들, 미대생이 되고 싶어하던 미고생들, 내가 입시 국어 가르치던 미고 제자들을 떠올리고 싶어졌다. 그리고 소재를 납품했던 사람들, 그 소재를 캐내고 재배하고 준비했던 사람들, 그 디자인과 소재를 가지고 상품을 만들었던 사람들, 생산 기계를 설계하고 제조했던 사람들, 조립하고 설치한 사람들을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그 상품을 포장하던 사람들, 컨테이너에 가득 싣고 달렸을 화물트럭 기사들, 배로 비행기로 나르고 옮겼을 손과 발을 기억하고 싶어졌다. 어떤 이익도 가치도 아름다움도 나누지 못할 잠깐의 공상이지만 문득 수레를 멈추고.
/이원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