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스케치 (6)
11일 오전 경기도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2024.3.11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전공의 집단 사직과 의료현장 이탈이 장기화되면서 정부는 PA(진료보조) 간호사를 적극 활용하는데 이어 향후 간호법 제정 가능성을 밝히고 있다. 지난 10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진료지원 간호사가 보다 원활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지침이 보완돼 본격 시행됐다. 하지만 상당수의 병원 현장은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의사의 업무를 떠안은 간호사들은 무엇보다 의료 과실에 따른 책임을 전가받을까봐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간호사 업무 지침을 보면 10개 분야 98개 진료지원행위 중 X-ray, 관절강 내 주사, 방광조루술, 요로 전환술, 전문의약품 처방, 전신마취 등 9개 행위를 제외한 89개 진료지원행위를 허용했다. 다만, 병원별로 의료기관장이 주요 진료과 및 간호부서장 등이 참여하는 조정위원회 협의를 거쳐 89개 진료지원행위 가운데 가능 범위를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정부는 "지침을 따르다가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병원장 책임"이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간호사들은 "소송이 제기되면 결국 우리도 책임을 져야 할 테고, 일자리마저 잃을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경기도내 한 병원 게시판에는 '의사의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공유 받지 않기', '불법 의료행위 거절하기' 등 간호사들의 업무 범위와 관련한 안내문이 부착되기도 했다. 치료가 절박한 환자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무리 인력이 부족하다지만 갑자기 간호사의 진료지원 범위를 대폭 넓힌 것은 성급한 조치"라는 우려다.

앞서 정부는 간호사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해달라는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지난해 4월 '간호사의 지위·업무 분리와 지역사회 돌봄 강화'라는 취지의 간호법 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 요구권(거부권) 행사로 제정이 무산되기도 했다. 이번 의료공백 사태에 다급해진 정부는 간호법에 대한 태도를 바꿔 제정에 힘을 싣고 있다. 국민의 생명을 다루는 중요한 의료정책은 즉흥적인 대응 논리로 다뤄서는 안된다.

정부는 보편적 의료 접근성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최고 수준의 의료시스템을 발전시켜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 의료 현장의 혼란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데 요지부동 강공책만 써서는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 귀를 크게 열고 각계 의견을 듣는 자세가 필요하다. 오늘도 환자들 곁을 지키고 있는 간호사들의 불안감을 해소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