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301000123100012761

2000년 4월 7일 발화해 15일까지 191시간 동안 이어진 동해안 산불은 역대 가장 큰 면적을 화마가 휩쓸었다. 고성·삼척·동해·강릉·울진 일대 산림 2만3천794㏊, 무려 축구장 3만5천개를 태워 없앤 셈이다. 건물 800여채가 불타 850명의 이재민이 피눈물을 흘렸다. 2022년 3월 4일 발생한 울진·삼척산불은 1만6천302㏊를 소실시켜 9천86억원의 피해를 입혔다. 진화하는데 213시간43분이 걸린 역대 최장기간 산불로 기록됐다.

두 초대형 산불은 양간지풍(襄杆之風)에 속수무책이었다. 양양과 간성에 부는 국지적 바람은 소형 태풍급에 버금간다. 동해안 산불은 최대풍속 23.7m/s, 울진·삼척산불은 27m/s였다. 실제로 30도 경사면에서 바람이 없을 때는 분당 0.57m의 느린 속도로 확산되지만, 6m/s의 속도만 불어도 분당 14.82m로 26배나 빨라진다. 바람에 화염이 옆으로 누우면서 열기를 쉽게 전달하니 불길이 순식간에 번진다. 우리나라는 산림의 37%가 소나무 중심의 침엽수림으로 구성되어 있어 화재에 더 취약하다. 테라핀 같은 정유물질을 약 20% 포함하고 있는 송진은 불쏘시개가 된다. 소나무 가지와 솔방울, 껍질 등에 불이 붙으며 생긴 불똥은 상승기류와 강풍을 만나면 2㎞ 가까이 날아갈 수 있다.

산불이 나면 동물들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덮친다. 2019년 4월 발생한 강원산불만 봐도 가축 4만여 마리가 폐사하거나 화상을 입었다. 축사에 갇힌 채 불길에 소 등껍질이 벗겨지고 뿔까지 뽑힌 현장은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처참했다. 2005년 4월에는 양양산불로 천년고찰 낙산사가 한순간 재로 변해 온 국민이 충격에 빠졌다. 보물 제479호 동종이 녹아내렸고 원통보전이 전소됐다. 문화적 재앙이다.

최근 10년간 3~5월 봄철 산불이 56%를 차지한다. 원인을 보니 입산자 실화, 논·밭두렁 소각 등이 66.5%로 사람 탓이 컸다. 역설적으로 사람이 조심하면 산불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말이다. 담배꽁초 하나라도 무심코 버릴 일이 아니다. 황폐해진 산불피해지가 산림의 골격을 갖추는데 30년 이상, 생태적 안정 단계에 이르려면 최소 100년 이상 걸린다. 3월, 대지는 말라가고 이제 슬슬 양간지풍이 불 때가 됐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