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행은 납치나 다름없었다. 150여 년 전 1871년 6월 미국의 조선 침략인 신미양요 당시 벌어진 광성보 전투에서 조선은 패배했고 깃발은 미군 손에 들어가 강제 여행을 떠나야 했다. 당시 전투에서 미군 전사자가 3명, 부상자가 10명인 반면 조선군 전사자는 어재연 장군을 포함해 무려 350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때 수자기는 군함에 실려 떠났고 미국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서 담요처럼 둘둘 말린 채 전시됐다.
두번째 여행은 2007년 10월의 일이다. 정부가 미 해군사관학교 박물관과 협의 끝에 '장기 대여' 형식으로 수자기를 들여와 136년 만에 다시 고국에 들여오기 위한 여행길이었다. 10년으로 기한이 정해진, '반환' 아닌 '대여'였지만 최근까지 1~2년 단위로 대여기간이 연장됐다. 계속 머무를 것으로 알았지만 우리 바람처럼 되지 않았다. 미국 해군사관학교는 대여 기간을 더 연장하지 않았다. 오는 2025년 봄부터 2028년까지 3년 동안 진행할 아시아 유물 특별전에 전시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평소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수자기를 당분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많이 아쉽다. 수자기 실물과 인사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게으름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우리에게 선택권조차 없고, 그저 보내야만 한다니 자존심도 상했다. 먼 길 잘 다녀오라고 작은 행사라도 치렀으면 하는 마음이었는데 바람처럼 되지는 않았다.
부디 수자기의 이번 여행길이 편도가 아니기만 바랄 뿐이다. 다음 귀국길이 수자기의 마지막 여행이 됐으면 한다. 반갑게 다시 인사하는 날까지 모두 함께 착실히 준비했으면 좋겠다.
/김성호 인천본사 정치부 차장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