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관동갤러리서 '글래버 가족 생애' 전시… 영국영사관 건물 모형도 재현
하나 글로버 베넷(Hana Glover Bennett·1876~1938)은 20대 초반 일본 나가사키에서 남편과 함께 인천으로 건너와 40여 년을 살다 생을 마감하고 인천 외국인묘지에 묻혔다. 오랜 기간 인천에 거주했으나, 그의 삶은 빈칸투성이였다.
일본의 연구자들이 '하나 글로버의 발자취'를 쫓아 개항기 인천에서 외국인은 어떻게 살았는지, 국제항으로서 인천은 나가사키 등 타국 항구도시들과 어떻게 연결됐는지 밝혀낸 전시가 인천 중구 관동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일본 나가사키종합과학대학교 지역과학연구소가 관동갤러리에서 주최한 '인천 영국영사관과 하나 글래버 베넷' 전시회는 하나 글로버(전시에선 '글래버'로 표기)와 그의 가족의 생애를 담은 각종 사진과 역사 자료를 전시한다. 처음 공개되는 자료가 대부분이다. 인천에 있었던 3곳의 영국영사관 건물을 재현한 모형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이달 30일까지다.
나가사키종합과학대학교 브라이언 바크 가프니 명예교수와 야마다 유카리 공학부 교수가 수년 동안 토머스 글로버와 하나 글로버를 연구했다. 이 과정에서 영국 국립공문서관이나 미국 의회도서관 등이 소장한 인천 영국영사관 건물들의 도면을 찾아냈다. 도면을 토대로 제작한 3개 영국영사관 건물 모형이 무척 정교하다. 지붕을 열면 건물 내부를 확인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하나는 스코틀랜드 출신 영국 상인 토머스 글로버(1838~1911)와 일본인 아와지야 츠루(1848~1899)의 딸이다.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나가사키와 도쿄에서 학교를 다녔고, 21살 때인 1897년 홈링거상회 직원인 영국인 월터 베넷(1868~1944)과 결혼했다.
그해 남편 월터가 홈링거상회 인천지점에서 근무하게 되자 남편과 함께 인천에 정착했다. 하나의 아버지 토머스 글로버는 일본 근대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꼽힌다.
하나 가족은 1915년 폐쇄된 영국영사관 건물(현 올림포스호텔 건물 자리)로 이사했다. 1950년대까지 남아 있던 3번째 영국영사관 건물이 아닌 그 인근에 1897년 건립된 2번째 영국영사관 건물이 하나 가족의 집이었다.
영국영사관 건물에서 살던 시절 하나와 그 자녀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도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영국영사관에서 인천항 쪽을 내려다본 사진도 있다. 월터는 1925년부터 1941년까지 영국 영사대리를 맡았다. 하나는 인천에서 4남매를 낳아 길렀다.
하나는 1938년 6월12일 사망해 중구 북성동 외국인묘지에 잠들었다. 하나의 묘비는 1965년 연수구로, 2017년 부평구 인천가족공원으로 옮겨져 현재까지도 잘 보존돼 있다. 하나 글로버 가족은 개항기 외국인 거주 지역의 생활사, 인천과 나가사키 등 국제 항만 간 활발한 교류, 인천 근대 건축 역사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남겼다.
도다 이쿠코 관동갤러리 관장은 "인천에서 40년이나 거주하다 잠들었음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하나 글로버의 생애와 역사를 복원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며 "3번째 영국영사관 건물 외에도 주목하지 않았던 최초의 영사관, 2번째 영사관 건물에도 지역사회에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