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립미술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展
주목받지 못했거나 혐오당하는 여성노동자
4개국 8명 작가 작품 통해 소외된 존재 조명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 반어적 역설 드러내
*김혜리 영화 에세이 (어크로스, 2017)
오랜 기간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노동은 존중받지 못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이를 인정하는 움직임이 싹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매매 종사자 등 일부 여성의 일은 이들의 삶에 담긴 복잡한 맥락과 상관없이 여전히 “노동이 아니”라며 쉽게 혐오당하기 일쑤다.
수원시립미술관의 2024년 첫 기획전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에서는 결코 혐오와 차별의 역사를 빼놓고 여성 노동자의 삶을 이야기할 수 없는 우리네 현실을 조명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들이 일하고 있었지만, ‘노동자’가 아닌 ‘투명인간’에 머물렀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여성의 노동을 주제로 다룬 4개국 여덟 작가의 작품은 우리 사회가 외면했거나, 지금도 외면 중인 불편한 진실을 들춰간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불편함’까지도 관람객에게 생각해볼 거리로 제시한다는 점이다.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 등 으레 ‘주목받지 못한 여성의 노동’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전형적인 사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제2전시실에 나란히 배치된 태국 작가 카위타 바타나얀쿠르와 강용석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뜨개 실로 옷감을 짜는 카위타의 영상 작품에서 씨실과 날실을 엮는 커다란 바늘은 다름 아닌 인간, 여성의 몸이다. 철저히 생산을 위한 수단 그 자체가 돼 착취당하는 나체 상태 여성의 모습은 의도적으로 불쾌함을 유발한다.
맞은편에는 동두천 기지촌에서 일하는 접객 여성과 미군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걸려있다. 강용석의 사진 ‘동두천 기념사진(1984)’은 당시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했던 여성이 동두천 기지촌에 머물며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가늠해 보게 한다. 이는 한국전쟁 이후 동두천·파주 등 주요 미군 주둔지 인근에 클럽과 성매매 업소가 들어서기 시작한 시대적 상황과 맞물린다. 자신의 몸을 도구로 삼아 미군을 상대로 노동하는 이들 여성의 삶에는 한국 사회의 모순성이 묻어난다.
세대도, 국적도 다양한 여덟 작가가 펼쳐낸 동시대 여성이 일하는 모습은 마침내 ‘연대’라는 가치로 수렴한다. 독일 출신 작가 로사 로이의 회화에는 서로서로 도우며 일하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몽환적인 배경을 뒤로한 채 쌍둥이처럼 보이는 두 여성의 형상이 카제인 물감 특유의 색감과 맞물려 독특하게 구현됐다. 이외에도 김이든의 설치 작품은 흑백 사진과 환등기를 활용해 소외됐던 여성들의 이름을 비춘다.
결국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은 ‘없다’. 무수한 여성 노동자를 다룬 작품을 하나하나 펼쳐낸 전시는 차별과 혐오의 시간을 견뎌온 여성 노동자를 향한 존경심을 반어적으로 역설한다. 장수빈 수원시립미술관 학예사는 “역사의 굴곡, 시대의 전환점에서 여성들의 노동에는 어떤 사회 구조적 문제가 있었는지 다루고자 했다”며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해왔던 수많은 여성을 다시금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또 다른 여성 노동자의 삶은 연계 영화 상영을 통해 살펴본다. 켄 로치 감독의 ‘빵과 장미(2000)’와 기지촌에서 일하던 여성의 이야기를 판타지 장르로 다룬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2019)’ 등 여성 노동을 주제로 한 10편의 영화가 상영될 예정이다. 전시는 오는 6월9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