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 출마자들 말 공세 요란
부정·교양·품성 '의심' 잇단 낙마
민주정치는 말의 씨앗·결실 과정
입 다물고 혀 감추면 편안하리라
정치지도자 '失言失人' 새겨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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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 칼럼니스트·(사)다산연구소 기획위원단
장음과 단음의 구별은 어렵다. 대표적으로 눈, 밤, 말이 그렇다. 얼굴의 눈과 캄캄한 밤은 단음이다. 새하얀 눈과 구워 먹는 밤은 장음이다.

학생시절 국어시험을 앞두고 외우는 방법은 이랬다. 펄펄 내리는 눈은 천천히 땅에 떨어지므로 장음, 눈꺼풀은 찰나의 순간 깜빡이므로 단음이다. 아침에 눈을 뜨기에 밤은 너무 짧고, 군밤은 호호 불며 까먹는데 시간이 걸린다.

말의 장단 구분은 쉽다. 본디 말이 빠르면 실수가 잦다고 하지 않던가. 의사전달이 중요하므로 또박또박 천천히 말해야 한다. 그러니 장음이다. 쏜살같이 질주하는 말은 당연히 단음이고.

그런데 말이 묘하다. 입으로 내뱉은 말이 내닫는 말보다 빠르다는 거다. 사불급설(駟不及舌)이다. 한 번 입 밖에 내보낸 말은 네 필 마차로도 쫓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언비천리(言飛千里)라고 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는 거다. 그만큼 말을 조심하라는 가르침이다.

문제는 말은 나가고 싶고 입은 열리기 쉽다. 아차 하는 순간 이미 늦는다. 설화(舌禍)는 발화(發話)하는 순간 벌어진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어서 도로 담을 수 없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내가 언제?"라며 발뺌해 볼 수도 있었을지 모르나 지금은 디지털 시대이다. 모든 말이 기록되고 재생되는 거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 총선이 눈앞이다. 여야 각 정당에서 출마(出馬)한 입후보자들의 말 공세가 요란하다. 특히 이번 선거는 과거에 내뱉은 자신의 말(言)에 출마자들이 속속 낙마(落馬)하는 모습이다.

사회적으로 정립된 가치를 부정하는 말, 정치적으로 비판의 금도를 넘어선 말, 기본적인 품성과 교양을 의심하게 하는 말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공천 취소가 잇따르고 있다. 이들의 언행은 지우거나 감추지 못하는 디지털 시대에 그 당시 그 목소리 그대로 소환되고 있다. 소셜미디어로 뜬 정치인들이 소셜미디어에 발목 잡히는 형국이라고 할까.

옛말에 삼사일언(三思一言)이라 했다. 세 번 생각하고 말하라는 거다. 혀 밑에 도끼가 있다고 하지 않던가. 설저유부(舌底有斧) 말이다. 불쑥 내뱉은 말이 자기자신을 해칠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말에는 장단이 있지만, 남의 장점과 단점은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했다. 불언장단(不言長短)이다.

조선 영조 때 김천택이 엮은 '청구영언'의 무명씨 시조도 그랬다.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을 하는 것이/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그야말로 세월을 격해 21세기 정치판에도 큰 울림으로 다가오지 않는가.

그럼에도 말은 민주주의의 뿌리이자 줄기이다. 특히 민주 정치는 말의 씨앗을 틔우고 결실을 맺는 과정이겠다. 때로는 최적의 언어가 최상의 정치로 이어진다. 예컨대 '사람들의, 사람들에 의한, 사람들을 위한 정부'는 민주주의의 원리로 인식됐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사람 사는 세상'도 링컨 대통령의 게티스버그 연설과 교집합일 터이다.

일언정천하정(一言正天下定)이라고 했다. 지도자의 말 한마디가 바르면 천하가 태평하게 된다는 거다. 반대는 불공정하고 몰상식한 말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 아니겠나. 요즘으로 치면 가짜뉴스를 만들어 퍼뜨리는 일 말이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는 언해무체(言海無滯), 언로(言路)에 막힘이 없어야 한다. 조선시대 연산군이 언관의 입을 '신언패(愼言牌)'로 막았다고 알려져 있다. 내용은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 폐구심장설(閉口深藏舌) 안신처처뢰(安身處處牢)'이다. 입이 재앙을 부르는 문이고,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입을 다물고 혀를 깊이 감추면, 몸이 어디에 있어도 편안하리라.

한때 대통령실의 수석비서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정치지도자를 압박해 물의를 빚었다. 이번에는 기자들을 상대로 '오홍근 기자 정보사 테러사건'을 소환했다. 정치인들의 마구잡이 '막말'도 문제이지만 시민들에 대한 '입틀막'에 이어 언론인의 말을 막는 '말막'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처사가 아닌가.

정치 지도자라면 실언실인(失言失人)을 가슴에 새길 일이다. 말도 사람도 잃지 않도록 말이다.

/박종권 칼럼니스트·(사)다산연구소 기획위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