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생각나는 소설이 있다. 김유정의 '봄봄'과 '동백꽃'이 그렇다. 해학과 향토적 이야기 속에 식민지 농촌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 김유정 문학의 특징인데, 새봄을 맞을 때마다 이 소설들이 떠오른다.
'봄봄'은 결혼을 미끼로 주인공을 데릴사위로 삼아 부려 먹는 장인과의 갈등을, '동백꽃'은 애정 공세를 펼치는 점순의 마음을 몰라줌으로써 생겨나는 갈등을 그리고 있다. 김유정이 농민문학에 큰 성취를 이룬 것은 작가의 역량과 환경적 조건 때문이다. 그는 대동법으로 유명한 김육(1580~1658)의 10대손이자 강원도 춘천시 실레마을 천석꾼 지주의 아들로 농촌의 현실과 농민들의 어려움을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또 휘문고보 시절의 단짝 친구 안회남의 영향도 있었다.
'봄봄'과 '동백꽃'의 주인공 '나'는 조금 모자라 보이는 인물이다. 그러나 '나'의 바보스러움은 데릴사위란 이름의 머슴('봄봄')이자 소작농이라는 사회적 위치('동백꽃')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는 동시대 농민의 전형이다. '동백꽃'은 이른 봄을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데, 소설은 오직 "알싸한"이라는 강렬한 한 단어로 수렴된다. 동백꽃이 알싸할 리 없는데, 김유정은 왜 "알싸한"이라 했는가. '동백꽃'의 가장 유명한 장면을 보자. 점순이의 닭을 죽인 죄로 실랑이하다 점순을 안고 동백꽃 속에 파묻히는 대목이다. "뭣에 떠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픽 쓰러진다. (…)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져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동백꽃 속으로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내음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당시 동백꽃의 북방한계선은 충청남도 남부로 강원도에서는 동백꽃이 필 수 없었다. '알싸한'이란 단어가 말하듯 소설에 나오는 '동백꽃'은 사실 '생강나무'다.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를 '동백꽃'이라 부르는 관례가 있다. '생강나무'는 가장 먼저 피는 봄꽃이며, 뒤를 이어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뜨린다. 지금 온 산하 대지는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연일 치솟는 과일 가격과 의대 교수들의 집단 사직 사태는 우리의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한다. 계절은 봄이건만, 사회적 봄은 아직 오지 않은, '춘래불사춘'의 시절이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