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公 항공MRO 직접수행 법안 폐기
부산·경남 지역언론 '사천 청신호' 보도
발전 기대 적극 호응… 결기 가득한 바람
인천 언론, 쟁점 불구 싸울 의지도 안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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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환 서울대 객원교수·객원논설위원
3월, 남녘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의 결이 사납다. 소름이 돋을 정도다. 지난 13일 부산·경남지역 언론이 불러일으킨 바람이 그랬다. 부산일보는 '인천공항 정비업무 수행 법안 폐지…사천 항공MRO 탄력?'이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기사를 게재했다. '경남 사천시의 항공기 정비(MRO) 산업 육성에 청신호가 켜졌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항공 MRO 직접 수행을 담은 관련 법안이 폐기됨에 따라 관련 산업이 사천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같은 날 경남일보도 '사천 항공MRO사업 도약 탄력 받나' 제하의 기사를 이렇게 실었다. '사천 항공MRO 사업이 다시 한 번 도약의 기회를 맞았다. 그동안 인천국제공항공사가 항공MRO산업에 뛰어들기 위해 추진해 온 인천국제공항공사법 개정 법안 중 항공기정비업 및 항공기취급업의 직접 수행 부분이 담겼던 법안이 사실상 폐기됐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인터넷 매체를 포함한 많은 언론이 유사한 제목과 내용의 기사를 이날부터 싣기 시작했고, 블로그들은 열심히 퍼서 날랐다. 전날 사천시가 배포한 보도자료가 바탕이 됐을 것이다. 사천시는 생뚱맞게 왜 그 시점에 그런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뿌렸을까.

부산·경남지역 언론이 일제히 '인천국제공항공사 MRO법안 폐기'를 보도한 바로 다음날, 인천 영종도에서는 매우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대한항공 신(新) 엔진 정비공장 기공식이다. 2016년부터 대한항공이 운영 중인 영종도 엔진시험시설 인근에 오는 2027년 아시아 최대 규모의 항공기 엔진정비단지가 들어선다. 완공되면 대한항공의 정비 가능 엔진 대수는 연간 100대에서 360대로 획기적으로 늘어난다. 국내 항공사 정비 물량은 물론이고 아시아·태평양지역 항공사 물량까지도 소화할 수 있다. 지금까지 없던 고부가가치산업의 새로운 활주로가 펼쳐지는 것이다.

앞서 지난 7일에는 인천 MRO의 이륙을 뒷받침하려는 정부의 의지까지 재확인됐다. 이날 인천 민생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인천국제공항을 글로벌 메가 허브 공항으로 도약시키겠다"면서 오는 2026년까지 공항 배후에 항공기 개조·정비 등 연계산업 육성이 가능한 첨단복합항공단지를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스라엘 최대 국영 방산업체인 IAI사의 노후 여객기 개조 사업이 오는 7월 인천에서 시작되고, 미국 화물전용항공사 아틀라스항공의 중정비센터가 홍콩에서 인천으로 이전하는 작업도 올해부터 본격화된다. 인천이 명실상부 글로벌 항공정비 산업의 요충지로 자리매김하게 됨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업들이다.

이쯤 해서 사천시가 굳이 그 시점에 보도자료를 배포한 까닭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겠다. MRO와 관련해 인천으로 집중되는 관심을 흩뜨려 보려는 의도 말고 또 뭐가 있었을까. 사천 MRO의 발전을 기대하고 지지하는 지역언론이 또한 적극적으로 호응해서 저토록 사납고, 거칠고, 소름 돋을 정도로 결기 가득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것이고.

그런데 간과할 수 없는 건 부산·경남지역 언론이 전하는 내용이 '팩트'라는 점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법을 개정해 공사의 MRO 직접 참여를 허용하느냐 저지하느냐가 쟁점의 핵심이다. 그 힘겨루기의 상대가 바로 경남 사천이고, 인천은 10전 10패 전패를 기록 중이다. 21대 국회가 끝나면 인천국제공항공사법 개정법률안 역시 자동 폐기된다. 부산·경남지역 언론은 전략적으로 그런 사실을 애써 환기시킨 것이다. 쟁점에 대해 한가로운 인천 언론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언제부터였나. 인천 언론은 마치 푸른 초원에서 풀 뜯어 먹는 초식동물과도 같다. 강인하지도 않고, 싸울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초지를 찾아낼 만큼 지혜롭지도 않다. 'MRO 직접 참여'가 빠진 채 대안으로 통과된 인천국제공항공사법 개정법률안을 놓고 잔뜩 기대감을 나타낼 정도로 어리석다. 둔한 내 귀에조차 공명조(共命鳥)의 처절한 비명으로도 들려 안타까웠던 저 남쪽의 사납고 거친 바람을 그저 맞고만 있다. 얌전한 당신, 좀 사나워져라. 분발해서 공멸(共滅) 말고 상생(相生)의 교훈을 되돌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충환 서울대 객원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