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영사관과 하나 글래버 베넷展'
영사 계보·3대 건물 변천사 확인
개항초~해방 서양인 가계사 조명
1930년경 상공계 주름잡던 위세
지난 기억 소환 아픔이 배어든다


인천관동갤러리. /전
인천관동갤러리. /전진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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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삼 건축평론가·'와이드AR' 발행인
인천에서 '인천 영국영사관과 하나 글래버 베넷展'이 열리고 있다. 일본 나가사키종합과학대학 지역과학연구소가 주축이 되어 2023년 동 대학 공동연구중점 프로젝트로 기획된 성과물 전시다. 전시장에서 3대에 걸친 인천 영국영사관 건물의 변천사를 확인할 수 있다. 1대 영사관 건물(1884년 이축), 2대 영사관 건물(1897년 신축), 3대 영사관 건물(1911년 신축)이 영국국립문서보관소(UK National Archives) 소장 도면 및 나가사키역사문화박물관 소장 사진 등을 바탕으로 건축모형으로 제작돼 시선을 모은다. 역대 영국 영사들의 계보도 확인할 수 있다. 1884년 6월 임시 부영사로 부임하여 1년간 재직한 제임스 스콧(1850~1920)은 한글연구의 권위자로 1887년 한국 최초의 한영사전을 발간한 인물이다.

정작 이 전시의 중심인물은 하나 글래버 베넷이라는 여성과 그녀의 가계도에 등장하는 친인척들이다. 특히 전시 주인공 하나는 스코틀랜드 사업가 토마스 B. 글래버와 내연의 처 일본인 츠루의 딸로 1876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1897년 홈링거상회의 영국인 직원 월터 베넷과 결혼하였으며 그해에 남편과 함께 인천으로 이주하여 40여 년을 살며 2남2녀를 두었다. 이들은 1차 세계대전 발발로 인해 1915년 폐쇄된 인천 영국영사관 건물로 이사 들어가 평생을 살았다. 그곳은 개항장 인천에 살았던 한국인들의 현실 세계와는 거리를 둔 별세계의 공간이었다. 하나는 1938년 사망한 후 인천 외국인묘지에 묻혔고, 현재 그녀의 묘비는 인천가족공원 외국인 구역에 있다.

남편 월터는 1909년 자신의 이름을 건 베넷상회를 설립하여 당시 인천 상공계와 사교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며 1925년 영국영사대리로 임명을 받기도 했다. 전시 패널에 등장하는 1935년경 베넷상회로 사용되었던 곳이 현재 옛 모습 일부를 간직하고 있는데 인천아트플랫폼 A동 인천생활문화센터로 개항 초 군회조점(郡廻漕店) 간판을 걸었던 건물이다. 월터는 태평양전쟁 발발 시까지 인천에 머물다가 1942년 영국으로 돌아갔고, 2년 후에 사망했다.

전시는 개항 초기부터 해방공간까지 개항장에 살았던 서양인 가족의 가계사를 조명하고 있는 까닭에 내용적으로 많이 생소하다. 특히 당시 일본인은 1895년 4천148명에서 1930년 1만1천238명으로 3배가량 급증한 반면 서양인은 급감하여 1930년경에는 33인에 불과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인구수는 적었지만 인천지역 상공계를 주름잡던 서양인들의 위세는 무시할 수 없었다고 하니 그 시절 인천에서 살았던 하나(베넷가)의 삶은 낯선 풍경인 까닭이다. 그래서 지난 시절 인천의 기억을 소환하는 전시에 아픔이 배어든다. 인천사람이라면 누구나 관람하기를 권하고픈 전시다.

관동갤러리는 금·토·일(오전 10시~오후 6시)에만 개관한다.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계속되는데 전시 마지막 날 오후 3시에 야마다 유카리 교수의 '글래버 가문 앨범을 통해서 본 인천 영국영사관' 주제의 세미나가 열린다. 참가비 없음.

※참고: '地域論叢'(no.39, 나가사키종합과학대학지역과학연구소), '사진으로 뒤돌아보는 하나 글래버 베넷의 일생'(브라이언 버크-가프니), '다시 쓰는 인천근대건축'(손장원).

/전진삼 건축평론가·'와이드AR'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