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당한 독립투사들의 모습들
손톱 찌르기·대못 박힌 상자 등
상상할 수 없는 잔인한 고문기구
역사적 현장 이제 왔다는게 죄송


지난 2월22일 겨울의 끝자락에 소복히 내린 눈으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온통 하얗게 덮여 있었다. 망루가 있는 붉은 벽돌 건물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니 벽면 두 곳에 거대한 태극기가 부착되어 있다. 그 사이 눈이 왔다고 누군가 눈사람을 만들어 놓아 마음을 살짝 누그러뜨려 주고 있었다.
나와 주위의 몇 사람이 몇 년 전부터 서울·경기지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고 있지만 한 회원의 거듭된 요청이 없었다면 내가 자발적으로 이 형무소를 찾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회원은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곳을 관람하시고는 그렇게 많이 우셨어요"라고 말했다.
간수들이 업무를 보았던 보안과 청사였던 전시관 1층에 들어서니 퀘퀘한 냄새가 올라왔다. 냄새 하나로 과거 고문을 당했던 독립투사들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아픔이 일어났다. 바로 이어지는 전시물. 1936년에 한반도 전역에 있었던 형무소 지도였다. 서대문형무소를 비롯해 경성, 평양, 원산, 대전, 공주, 광주, 부산 등 전국에 뻗어있는 28개의 형무소와 소년원, 형무지소는 일제에 대한 우리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2층 전시관에는 죄수들을 옥죄는 수형 기구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사상범 4천800명의 사진이 붙어있는 수형기록카드가 사방 벽을 다 채우고 있다. 익히 알려진 이들도 많이 보이는데, 그중 한용운의 사진은 자세가 남다르다. 한용운은 정면 사진에서 비웃음을 띠며 날카롭게 앞쪽의 누군가를 쏘아보고 있다. '저렇게 저항했으니 변절하지 않을 수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지하실에 전시된 사형장과 시신을 내가던 시문구에 이르니 모골이 송연했다. 사형장 안에는 목밧줄이 있는 사형대와 그곳에서 죽어간 독립투사들의 사진이 십수 장 붙어있다. 사형을 앞두고 최고령 독립투사 강우규(1855~1920) 의사가 남긴 "단두대 위에 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이는구나. 봄은 있으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라는 유언이 사형대 근처에서 반복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독립투사들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유독 슬픈 눈을 한 인물들이 보인다. 강우규 의사의 눈도, 김용원(1892~1934), 박의승(1886~1921) 의사의 눈도 깊은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
이어지는 지하 전시관은 수감자를 조사하고 취조하던 고문실이다. 물고문부터 손톱 찌르기 고문, 상자 고문(대못이 박혀있는 상자 속에 수감자를 넣어 밖에서 상자를 흔들어 찔리게 하는), 벽관 고문(옴짝달싹할 수 없이 좁은 공간에 사람을 감금해서 앉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게 하는) 등과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잔악한 고문들이 이어져 신체가 부러지거나 찢기는 것은 기본이고 장기가 파열되고 허파에 물이 차고, 뇌진탕에 걸려 옥사하거나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쪽에서는 모진 고문을 당했던 생존 독립운동가나 그 가족들의 증언이 영상으로 보여지고 있다.
여성 수감자들이 갇혀있던 여옥사(女獄舍)는 독립운동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컸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서대문형무소를 둘러본 우리 일행은 짤막한 한숨만 내쉴 뿐 한동안 말을 잃었다. 비통함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형무소를 벗어나 우리는 시내로 들어왔다. 그리고 한 찻집에 들어가 각자 느낀 점을 이야기했다.
A : "우리나라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나? 지도자들이 정말 잘해야 한다. 학교 다닐 때 조선시대에는 여성들이 권한이 없다고 배웠는데, 실제는 대비가 왕을 선출하는 권한도 있었고, 양반가에서도 마님이 곳간 열쇠를 차지하고 있었다. 여기 여성 독립운동가를 보면서 그런 권한이 있어서 독립운동에 나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B : "그동안 우리 역사에 무관심했는데 현장을 보면서 많은 반성을 했다. 현장을 지킨 분들 때문에 우리가 편히 살고 있는 거다."
C : "대못이 박힌 통 속에 사람을 집어넣고 흔들어서 고문했다니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하다."
D : "임신중에 전쟁 나지 않도록 하라는 성경 말씀이 생각난다."
나 : "역사적인 현장에 이제야 왔다는 점이 너무 부끄럽고 죄송하다. 만일 내가 여기 투옥되어 고문을 당했다면 어떠했을까 자문하게 된다. 아마 하루도 못 견뎠을 것이다."
/김예옥 출판인